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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일반

여자핸드볼 - 세계 1위인데 별명이 '한데볼'이었다

by marsol-sports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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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1984년 올림픽에 처음 나간 뒤 2012년까지, 여덟 번의 대회에서 한 번도 4위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

올림픽 금메달 두 개, 세계선수권 우승 한 번. 아시아 국가 중 이 둘을 모두 해낸 팀은 이 팀뿐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우승은 비유럽권 최초였고, 1995년 세계선수권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 종목의 별명은 '한데볼'이었다. 한데, 그러니까 바깥에서 한다는 뜻이다.

세계 정상에 30년 가까이 머물러 있는 종목의 이름이 조롱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경기 이미지

1988년, 첫 금메달

한국이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딴 첫 금메달이 1988년 서울 여자핸드볼이다.

이 시리즈에서 서울올림픽은 여러 번 다뤘다. 복싱 판정, 벤 존슨, 비둘기, 사라진 나라들. 그런데 그 대회에서 한국이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된다.

 

4년 뒤 바르셀로나에서도 우승했다. 2연패였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 2004년 아테네에서 다시 은메달. 아테네 결승전은 훗날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정도 성적을 낸 종목이 한국에 또 있는지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실업팀이 네 개였다

2004년 아테네 이전, 국내 여자 실업팀은 네 개였다.

선수 저변이 그만큼 얇았다. 전용 경기장도 없었다. 국제대회를 나갈 때마다 열악한 여건이 기사에 실렸고, 대회가 끝나면 잊혔다.

아테네 결승전이 화제가 된 뒤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한 대기업이 지원을 자처했고, 실업팀이 여덟 개로 늘었다. 핸드볼 전용 경기장도 생겼다.

성적으로 20년을 버텼는데, 여건이 바뀐 계기는 영화였다.

이 대목이 나는 오래 걸린다. 금메달 두 개로는 안 됐고, 진 경기 하나가 영화가 되고 나서야 됐다.

다른 방식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같은 나라 남자 대표팀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그런데 보수는 그렇지 않았다.

 

2016년, 다섯 명의 선수가 고용평등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냈다. 2019년 3월에는 대표팀 선수 28명이 미국축구연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임금과 근무 조건에서 제도적인 성차별이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그해 여름 프랑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미국이 우승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관중석에서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2020년에는 연맹이 법정에 제출한 서면에 여자 선수들을 폄하하는 표현이 담긴 것이 드러나면서 회장이 사퇴했다. 후임으로 연맹 역사상 첫 여성 회장이 취임했다.

2022년 2월, 합의가 이뤄졌다. 연맹은 2,4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앞으로 친선경기와 대회를 통틀어 남녀 대표팀에 동일한 보수를 지급하기로 했다. 월드컵 보너스도 포함됐다.

두 개의 승리

한국 여자핸드볼 선수들은 이겼다. 계속 이겼다. 그리고 기다렸다.

미국 여자축구 선수들도 이겼다. 그리고 소송을 걸었다.

이 차이를 개인의 성격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나는 두 나라의 제도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고용 차별을 다투는 법적 통로가 있었고, 선수 노조가 있었고, 단체교섭이라는 틀이 있었다. 1972년에 만들어진 교육 관련 법률이 여성 스포츠의 기반을 오래전에 깔아둔 것도 컸다.

 

한국 여자핸드볼 선수들에게는 그런 통로가 없었다.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발상 자체가 낯선 환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이미 이기고 있었다. 이기는 팀이 문제를 제기하면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19편에서 잉글랜드축구협회가 여자축구를 금지하기 위해 회의를 열고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막으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만큼 여자축구가 컸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반대다. 아무도 금지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조용한 방식

종목이 죽는 것은 조용하다고 3편에서 썼다. 자라지 못하는 것도 조용하다고 19편에서 썼다.

성과를 내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것 역시 조용하다.

누가 나서서 여자핸드볼은 지원할 가치가 없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중계가 없었고, 스폰서가 없었고, 기사가 안 났다.

명시적인 차별은 싸울 대상이 있다. 소송을 걸 수 있고, 결의안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는 싸울 대상이 없다.

그래서 미국 선수들은 2,400만 달러와 제도 변경을 얻어냈고, 한국 선수들은 영화 한 편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지금도 올림픽에 나가고 있다. 열한 번 연속 출전이다. 40년 가까이다.

다만 1984년부터 2012년까지 유지되던 4위 이내 성적은 그 뒤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세계 핸드볼의 수준이 올라갔고, 유럽 리그의 투자 규모가 달라졌다.

 

정상에 있을 때 받지 못한 지원은 나중에 받아도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스포츠에서 시기를 놓친다는 것은 대개 그런 뜻이다.

우생순이라는 말은 지금도 종종 쓰인다. 대체로 감동적인 투혼을 가리킬 때 쓴다.

그런데 그 말이 나온 경기는 결승전이었고, 한국은 졌다. 그 팀은 그전에 두 번 우승했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한 최고의 순간은, 그들이 실제로 가장 높이 올랐던 순간이 아니었다.

 

두 팀 다 자기 나라 남자팀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냈다.

한쪽은 그것을 근거로 싸워서 제도를 바꿨고, 다른 한쪽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30년에 걸쳐 확인했다.

이기면 인정받는다는 말은 스포츠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기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이었다. 충분조건은 따로 있었다.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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