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일반

피가 번진 수영장 — 그렉 루가니스

by marsol-sports 2026. 8. 15.
반응형

1988년 9월, 잠실 수영장. 남자 3미터 스프링보드 예선.

그레그 루가니스가 뒤로 도는 회전 동작을 하다 뒷머리를 다이빙대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가 났고, 그는 물에 떨어졌다.

물속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머리를 감싸 쥔 것이었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저 피가 새어 나가지 않게 붙잡고 싶었다고. 아무도 그것에 닿지 않기를 바랐다고.

그때 그 수영장에서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뿐이었다.

8개월전

서울올림픽 여덟 달 전, 그는 HIV 양성 판정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던 그의 연인이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 HIV 감염자에게 흔한 증상이었다. 플로리다에서 훈련 중이던 루가니스는 검사를 받았고, 양성이 나왔다.

 

1988년이다. HIV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다. 훗날 그는 당시의 계획을 이렇게 말했다. 양성이면 짐을 싸서 집에 틀어박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코치 론 오브라이언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함께 울었다고 한다. 코치는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죽는 날을 세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가는 편이 낫다고.

 

그는 네 시간마다 약을 먹으며 훈련했다. 올림픽 기간에도 계속 먹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국올림픽위원회에도, 미국 다이빙 협회에도.

다섯 바늘의 봉합수술

 

머리를 부딪힌 뒤 그는 수영장 옆에서 봉합을 받았다. 다섯 바늘이었다.

 

의사는 그의 감염 사실을 몰랐다. 장갑도 끼지 않은 상태였다.

봉합을 마친 뒤 그는 남은 예선 다이빙을 뛰었고 결승에 올랐다.

 

다음 날 스프링보드에서 금메달을 땄다. 다시 일주일 뒤 10미터 플랫폼에서도 우승했다. 남자 다이버가 두 대회 연속으로 두 종목을 모두 석권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시상 뒤 그는 코치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남아 있다. 우리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세상이 알게 된 것은 7년 뒤다.

1995년 HIV감염자로 밝혀지다

1994년 그는 동성애자임을 공개했다. 이듬해 방송 인터뷰에서 HIV 감염 사실과, 서울 당시 이미 감염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반응은 갈렸다. 감동적인 이야기로 읽는 사람이 있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판의 핵심은 하나였다. 감염 사실을 공개할 의무는 없지만, 자기 상처를 맨손으로 꿰맨 의사에게는 알렸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같은 대회에 출전했던 한 미국 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루가니스 본인의 대답은 이랬다. 염소 소독된 수영장 물에서는 HIV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자기 머리를 꿰매준 두 의사였다는 것. 그는 그 점을 인정했다.

1988년이라는 조건

이 논쟁을 지금 기준으로 판단하면 길을 잃는다.

1988년에 HIV 감염 사실을 공개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했는지를 함께 놓아야 한다. 당시에는 감염 경로에 대한 정보가 지금처럼 정리돼 있지 않았고, 감염자는 격리와 낙인의 대상이었다. 공개는 선수 생활의 끝이 아니라 사회생활 전체의 끝을 뜻할 수 있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감염자였고, 그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것을 잃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의 결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의사 두 사람이 맨손으로 그의 피를 만졌다.

두 가지 다 사실이다. 어느 한쪽만 말하면 이 이야기는 거짓이 된다.

사고 하나가 바꾼 것

이 사건은 스포츠계가 혈액 관리 규정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경기 중 출혈이 발생했을 때의 처치 절차, 의료진의 보호 장비 착용, 혈액이 묻은 장비의 처리 같은 것들이 이후 표준으로 정리됐다.

 

지금은 축구 경기에서 선수가 피를 흘리면 일단 밖으로 내보내고, 유니폼에 피가 묻으면 갈아입힌다. 의료진은 당연히 장갑을 낀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그 구조다. 조항 하나마다 그 앞에 사람이 한 명씩 서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다른 편들에서는 누군가 죽은 뒤에 규칙이 생겼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규칙이 생겼다. 하마터면 일어날 뻔한 일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 후

루가니스는 1988년 이후 은퇴했다. 미국 내에서 47회 우승과 13회 세계선수권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죽지 않았다. 치료제가 발전했고, 그는 지금도 살아 있다. 예순이 넘었다.

 

1988년의 그가 확신했던 것, 그러니까 짐을 싸서 집에 틀어박혀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다행히 틀렸다.

다만 그는 오랫동안 다른 것들과 싸웠다. 우울과 약물 문제에 대해 그는 자서전에서 솔직하게 썼다. 코치는 그가 왜 시리얼 상자 표지 모델이 된 적이 없는지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성적 지향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다이버였는데 광고가 붙지 않았다.

 

우리는 1988년 서울을 한국이 세계에 데뷔한 무대로 기억한다.

같은 무대에서 한 미국 선수는 여덟 달째 비밀을 안고 있었다. 그가 물속에서 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을 때, 전 세계가 그 장면을 보면서 아무도 그 동작의 의미를 몰랐다.

 

경기장은 그런 곳이다. 수만 명이 같은 장면을 동시에 보는데, 그 장면 안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다음 날 다시 보드 위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겼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