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영화 <국가대표>를 봤다.
스키점프에 반해서 캠프에 참가했고,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을 떠나 혼자 강원도 평창으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그 아이가 목표로 삼은 무대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여자 스키점프 종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식 종목이 된 것은 2014년 소치다.

2005년의 발언
여자 스키점프가 왜 그렇게 늦었는지 설명하는 자료는 많다. 그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국제스키연맹 회장의 2005년 발언이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키점프는 1년에 천 번쯤 2미터 높이에서 땅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고, 그것이 여성에게 의학적으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5년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여자가 마라톤을 하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다뤘다. 1921년에는 잉글랜드축구협회가 여자가 축구를 하면 축구가 여성의 몸과 출산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결의를 하였다.
2005년에도 국제 스포츠 기구의 수장 입에서 여자가 스키점프를 하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하였다.
미국 선수 린지 밴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자궁이 아직 안 떨어졌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우습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고, 자기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한 쪽이 창피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의 반문도 남겼다. 여성의 생식기관은 몸 안에 있고 남성은 몸 밖에 있는데, 그 논리라면 밖에 있는 쪽이 더 위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
공식적으로 제시된 거부 사유는 다른 것이었다.
첫째, 여자 스키점프가 올림픽 종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둘째, 자격을 갖춘 여자 선수가 충분하지 않다.
종목이 올림픽에 들어가려면 일정 수 이상의 나라에서 시행돼야 하고, 세계선수권이나 대륙선수권에서 두 차례 이상 열려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여자 스키점프의 첫 세계선수권은 2009년에야 열렸다.
여기서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가 지적한 것이 있다.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이다.
올림픽에 못 나가니 지원이 없고, 지원이 없으니 선수가 늘지 않고, 선수가 적으니 올림픽에 못 나간다. 원인과 결과가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구조다. 잉글랜드 여자축구와 정확히 같은 모양이다. 금지가 종목을 위축시키고, 위축된 것이 금지의 근거가 됐다.
2009년, 밴쿠버 법정
2008년, 여자 스키점프 선수 열다섯 명이 밴쿠버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다섯 나라 선수들이 함께했다.
근거는 캐나다 권리자유헌장의 평등권 조항이었다. 남자 종목만 열고 여자 종목을 열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조직위 측의 방어 논리는 간단했다.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전적인 소유물이며, 종목 결정 권한은 조직위에 없다는 것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불평등은 존재한다. 다만 그 문제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관할이며 캐나다 헌장을 적용할 수 없다.
차별은 인정하되 구제는 못 한다는 결론이었다. 항소도 기각됐다.
린지 밴은 그해 2월 체코에서 열린 첫 여자 스키점프 세계선수권 초대 챔피언이었다. 그는 원고 중 한 명으로 재판에 매일 출석했다.
세계챔피언이 자기 종목을 열어달라고 법정에 앉아 있었다.
밴쿠버, 그리고 소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여자 스키점프는 없었다.
이 시리즈 17편에서 다룬 에디 디 이글이 그해 성화 봉송에 참여하면서 이 판결을 언급했다. 자기 나라를 대표해 그 종목을 하고 있다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꼴찌를 했다는 이유로 출전 규정이 강화된 사람이, 아예 출전할 수 없는 사람들 편을 든 것이다.
2011년 4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14년 소치 대회에 여자 스키점프를 포함하기로 의결했다.
결정에 영향을 준 계기 중 하나로 언급된 것은, 그 직전 독일에서 열린 대회에서 여자 선수들이 강풍과 안개 속에 뛰는 것을 위원 한 사람이 직접 본 일이었다.
수십 년간의 논리적 반박보다, 실제로 뛰는 것을 본 경험이 컸다는 이야기다.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 나오는 대목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장면이다.
2018년 2월 12일, 알펜시아
이제 그 초등학생 이야기로 돌아온다.
박규림은 1999년생이다. 2010년에 영화를 보고 스키점프를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평창으로 갔다. 부모는 처음에 반대했다고 한다.
시작한 지 6년 남짓 지난 2017년, 그는 국제스키연맹 월드컵 여자 노멀힐에서 30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경쟁자였던 캐나다 선수가 복장 규정 위반으로 실격되는 행운도 따랐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개최국 자동 출전권이 있었다. 그냥 나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자력 출전을 택했다. 무임승차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해 12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컵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스키점프 선수가 국제대회 시상대에 선 첫 사례였다.
2018년 2월 12일,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여자 노멀힐 개인전 1라운드에서 그는 56미터를 날아 14.2점을 받았다. 출전 선수 35명 중 최하위였고, 상위 30명이 오르는 결선에 가지 못했다.
1호라는 자리
경기 전 그는 여자 스키점프 선수 1호라는 자부심을 갖고 임하겠다고 했다.
이 문장을 곱씹어보면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 스키점프의 뿌리는 1991년이다. 한 기업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생소한 종목을 육성했고, 그때 초등학생이던 선수들이 26년 뒤에도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기들을 넘어서는 후배가 없어서 아직 대표를 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남자 쪽 저변이 그 정도였다. 여자 쪽은 아예 없었다.
박규림에게는 앞서 간 선배가 없었다. 참고할 훈련 방식도, 물어볼 사람도, 따라갈 기록도 없었다. 종목 자체가 그가 시작할 때는 올림픽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조건에서 자동 출전권을 마다하고 자력으로 나갔다.
35명 중 35위라는 기록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35위 안에는 2005년의 그 발언과 2009년의 그 판결과 2011년의 그 의결이 전부 들어 있다.
세 편이 만나는 자리
보스톤 마라톤에서 여자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는 1967년에 등을 잡혔다. 잉글랜드의 여자 축구선수인 딕 커 레이디스는 1921년에 경기장을 잃었다. 그리고 여자 스키점프 선수들은 2011년까지 올림픽 문 앞에 서 있었다.
세 이야기에 같은 문장이 나온다. 여성의 몸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장이다.
1921년의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의사들의 견해를 인용했다. 1960년대 육상계도 그랬다. 2005년의 국제스키연맹 회장도 의학적 관점이라는 표현을 썼다.
100년 동안 같은 말이 반복됐다. 매번 과학의 옷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 매번, 그 말은 틀렸다.
여자 스키점프가 올림픽에 들어온 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다.
그 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여자가 스키점프를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있는 종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맞다. 싸움의 결과는 그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히는 것이니까.
다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2010년에 <국가대표>를 보고 스키점프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그 초등학생은, 자기가 목표로 삼은 종목이 올림픽에 없다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알고도 계속했을까, 아니면 모르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알게 됐을까.
어느 쪽이든 그는 계속했다. 그리고 8년 뒤 자기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자기 힘으로 얻은 출전권을 들고 점프대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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