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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뒷이야기

라면 소녀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by marsol-sports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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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17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성화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들고 온 사람은 손기정이었다. 쉰두 해 전 베를린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노인이 그날은 태극기 아래를 달렸다.

그가 성화를 넘긴 상대는 스무 살 남짓의 여자 육상선수였다. 트랙을 한 바퀴 돌아 최종 점화자들에게 넘긴 그 선수의 이름은 임춘애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를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딴 소녀로 기억한다. 사실이 아니다.

임춘애 - 선발전에 없던 선수

임춘애 선수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임춘애는 원래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발전 이후 열린 전국체전 3000미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그를 대표팀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뒤늦게 합류했다.

 

그리고 800미터, 1500미터, 3000미터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한국 육상 역사에서 아시안게임 3관왕은 지금까지 그가 유일하다.

3000미터에서는 경쟁자였던 중국 선수보다 개인 최고 기록이 10초 이상 뒤져 있었다. 그런데 이겼다.

무명에서 3관왕으로. 언론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코치의 한마디

이야기가 만들어진 건 그다음이다.

당시 그를 지도한 코치가 운동부의 열악한 환경을 설명하면서,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말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라면만 먹고 금메달 세 개를 땄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라면 소녀가 탄생했다. 전국에서 후원이 쇄도했다.

임춘애 본인은 이후 인터뷰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밀가루가 입에 맞지 않아 라면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체력 보강을 위해 도가니탕이며 삼계탕 같은 것을 먹었다고도 했다. 코치도 과장됐다고 설명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십대 중반이 된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라면 소녀다.

훗날 그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척 화가 났다고 회고했다. 자기가 한 말도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듣게 됐는지 속상했다고. 다만 자기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일임을 알고 난 뒤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주자 임춘애

그는 서울올림픽 개막식 최종 성화 봉송 주자 중 한 명이 됐다.

그런데 정작 경기에서는 주 종목에서 모두 예선 탈락했다. 아시아 수준과 세계 수준의 격차가 컸고, 당시의 훈련 방식도 한계에 부딪혔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선수들이 견뎌야 했던 훈련은 지금 기준으로는 폭력에 가까웠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라면 소녀가 이제 배가 불러서 열심히 안 한다고.

없는 이야기로 영웅이 된 사람이, 그 없는 이야기 때문에 비난받았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은퇴했다. 이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았다.

그리피스 조이너 - 여자육상에서 가장 빠른 여자

같은 대회, 같은 트랙에서 또 한 명의 여자 선수가 있었다.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 세 개를 땄다. 그때 세운 100미터와 200미터 세계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는 육상장에 다른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몸에 딱 붙는 한쪽 다리만 덮는 경기복, 길게 기른 화려한 손톱, 흩날리는 머리, 화장. 트랙에 화려함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여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이 곧바로 의심의 근거가 됐다. 저렇게 근육이 붙었는데, 저 나이에 저렇게 빨라졌는데,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그는 도핑 검사에서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약물 사용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 직후 스물여덟에 돌연 은퇴한 것도 의심을 키웠다. 하필 육상계의 검사가 강화되던 시기였다.

 

1998년 9월 21일

그는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서른여덟이었다.

사망 직후 며칠 동안 심장 문제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동시에 약물 부작용이라는 추측 보도가 쏟아졌다.

검시 결과가 나온 것은 한 달 뒤였다. 결론은 이랬다.

 

그녀에게는 해면상 혈관종이라는 선천적 뇌혈관 기형이 있었고, 그로 인한 발작이 일어났으며, 잠든 자세에서 기도가 막혀 질식했다. 의료진은 이 뇌 기형이 어떤 금지약물과도 연관된 바 없다고 밝혔다.

 

약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를 약물 중독으로 죽은 선수로 기억한다. 첫 보도는 크게 실리고 정정은 작게 실린다. 그 한 달 사이에 이야기가 굳어버린 것이다.

명백한 사실 

여기서 정직해야 할 부분이 있다.

검시 기록이 입증한 것은 그가 약물 때문에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역 시절 약물을 쓰지 않았다는 증명은 아니다. 사후에 약물 검사는 수행되지 못했다.

 

의혹은 끝내 증명되지도, 반증되지도 않았다. 그 상태로 남아 있다.

내가 이 글에서 판정하려는 것은 그가 약물을 썼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 세 가지는 적어두고 싶다. 그는 도핑 검사에 적발된 적이 없다. 약물로 죽지 않았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약물로 죽은 사람으로 기억돼 왔다.

 

그의 처제이자 역시 3관왕이었던 재키 조이너커시는, 그의 죽음을 약물 탓으로 몰아간 이들에게 예의가 없다고 말했다. 조카가 어머니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자라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만들어진 이야기의 수명

한 사람은 없는 미담으로 기억됐고, 다른 한 사람은 없는 오명으로 기억됐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구조는 같다. 둘 다 본인이 만들지 않은 이야기다. 둘 다 본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둘 다 그 이야기 때문에 실제 삶이 영향을 받았다.

 

미담이든 오명이든, 남이 만들어 씌운 이야기는 그 사람보다 오래 산다.

임춘애는 아시안게임 3관왕이었다. 이것이 그의 실제 업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라면을 기억한다.

플로조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세계기록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의 실제 업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약물을 기억한다.

 

야담을 쓰다 보면 자꾸 같은 자리에 도착한다. 사실보다 이야기가 힘이 세다는 자리다.

조선의 야담도 그랬다.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있었으면 좋았을 일이 더 많이 전해졌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모양으로 다듬어져서.

 

그래서 야담을 쓰는 사람이 할 일은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가 어디서 왜 생겼는지를 되짚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면 소녀라는 다섯 글자가 한 사람의 40년을 따라다녔다. 우리가 그 말을 쓸 때마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조금씩 더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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