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로야구 경기장에는 구급차가 상시 대기한다. 응급의료진도 경기장 안에 있다. 심장충격기가 곳곳에 놓여 있다.
2000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해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에서 한 선수가 쓰러졌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2000년 4월 18일, 잠실 2루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 2회 초였다.
임수혁은 상대 유격수의 실책으로 1루에 나갔고, 다음 타자의 안타로 2루까지 갔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2루에 서 있던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채 다리를 떠는 모습이었다. 구단 트레이너가 달려 나왔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선수들도 몰랐다. 사람들은 들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원인은 평소 앓고 있던 부정맥이었다. 급성 심정지였다.
심정지 상황에서는 몇 분이 전부다. 그 몇 분 동안 그라운드에서는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구급차는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
식물인간 - 9년 10개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그리고 9년 10개월을 그 상태로 보냈다. 2010년 2월 7일,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10년 동안 야구계는 그를 잊지 않았다. 돕기 위한 행사가 열렸고, 여러 구단 선수들이 모금에 참여했다. 그의 등번호 20번은 오랫동안 비워졌다.
후배 포수 강민호가 47번을 단 것도 이 사람 때문이다. 임수혁의 통산 홈런 개수가 47개였다.
2003년에는 민사 조정이 있었다. 그날 경기를 치른 두 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응급 사고가 법정 분쟁으로 간 거의 유일한 사례다.
2003년 6월 26일, 리옹
3년 뒤 프랑스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 카메룬과 콜롬비아의 경기. 후반 27분 무렵, 카메룬 미드필더 마르크비비앙 포에가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몸싸움도, 충돌도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무너졌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의료진이 곧바로 달려갔고 심폐소생술이 시행됐다. 그러나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비대성 심근증으로 알려졌다.
그날 카메룬은 이겼고, 결승에 올라갔다. 며칠 뒤 열린 결승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승전이 됐다.
두 죽음이 남긴 것
임수혁의 일 이후 한국 프로스포츠는 응급 대응 체계를 손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구급차가 경기장에 상시 대기하고, 협약 병원에서 파견된 의료진이 경기장 안에 있다.
포에의 죽음 이후 국제 축구는 선수의 심장 검진을 훨씬 엄격하게 다루게 됐다. 대회 전 의학 검사가 강화됐고, 심전도 검사가 표준 절차에 들어갔다.
비대성 심근증은 젊고 건강해 보이는 운동선수에게서 갑자기 나타난다. 증상 없이 지내다가 격렬한 운동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진이 유일한 예방책에 가깝다.
두 사람 다 검진으로 미리 걸러졌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검진이 표준이 아니었다.
규칙집은 사고의 목록이다
이 시리즈에서 이미 한 번 쓴 문장이다. 김득구의 죽음이 15라운드를 12라운드로 줄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썼다.
같은 구조가 여기서도 반복된다. 그라운드에 구급차를 두는 규정, 의료진을 상주시키는 규정, 심장 검진을 의무화하는 규정. 이것들은 전부 누군가 쓰러진 뒤에 만들어졌다.
안전 규정이 사전에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사후에, 그것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다음에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개선이라고 부른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 개선의 값을 낸 사람은 그 개선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금의 경기장에서는
요즘 프로 경기장에서는 관중석에서 사람이 쓰러져도 몇 분 안에 의무 트레이너와 의료진이 달려간다. 실제로 그렇게 사람이 살아난 사례가 여러 차례 보도됐다.
2021년 유로 대회에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경기 중 쓰러졌을 때, 팀 동료들이 즉시 그를 둘러싸 가렸고 의료진이 곧바로 심폐소생술과 제세동을 시행했다. 그는 살아났고, 나중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2000년 잠실과 2021년 코펜하겐 사이에 놓인 것은 기술이 아니다. 그 21년 동안 누적된 사람들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에릭센이 살아난 데에는 임수혁의 몫이 있다. 직접적인 인과는 아니지만, 세계 스포츠가 그라운드 위 심정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워온 과정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임수혁의 등번호 20번은 롯데에서 오래 비워져 있었다. 카메룬 대표팀은 포에의 번호를 다시 쓰지 않기로 했다.
번호를 비워두는 일은 실용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번호를 누가 달아도 팀이 약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워둔다.
기록은 남기고 자리는 비워두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은 대체로 그렇게 서툴다.
그런데 그 서투른 방식이 가끔은 규칙집으로 옮겨간다. 구급차 한 대, 검진 항목 하나, 트레이너의 교육 과정 한 줄로.
그게 아마 가장 실질적인 추모일 것이다.
심정지는 목격자의 즉각적인 심폐소생술 여부가 생존율을 크게 좌우합니다. 가까운 소방서나 보건소에서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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