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6 이 나라들은 지금 없다 — 서울올림픽 메달 집계표라는 유령 명단 1988년 서울올림픽 메달 순위표를 지금 펼쳐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1위는 소련이다. 금메달 55개, 전체 132개. 2위는 동독으로 금메달 37개, 전체 102개다. 3위가 미국, 4위가 개최국 한국이었다.1위와 2위를 한 두 나라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냉전의 마지막 올림픽서울올림픽은 냉전기의 마지막 하계 올림픽이었다.앞선 두 대회는 반쪽짜리였다. 1980년 모스크바는 서방이 대거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는 동구권이 불참했다. 8년 동안 세계 최강들이 한자리에서 겨룬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그들이 다시 모였다. 159개국에서 8,391명이 왔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그래서 서울올림픽의 기록들은 무겁다. 벤 존슨과 칼 루이스가 같은 트랙에 섰던 것도, 소련과 미국이 같은 종목에.. 2026. 8. 15. 피가 번진 수영장 — 그렉 루가니스 1988년 9월, 잠실 수영장. 남자 3미터 스프링보드 예선.그레그 루가니스가 뒤로 도는 회전 동작을 하다 뒷머리를 다이빙대에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가 났고, 그는 물에 떨어졌다.물속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머리를 감싸 쥔 것이었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저 피가 새어 나가지 않게 붙잡고 싶었다고. 아무도 그것에 닿지 않기를 바랐다고.그때 그 수영장에서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뿐이었다.8개월전서울올림픽 여덟 달 전, 그는 HIV 양성 판정을 받았다.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던 그의 연인이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다. 당시 HIV 감염자에게 흔한 증상이었다. 플로리다에서 훈련 중이던 루가니스는 검사를 받았고, 양성이 나왔다. 1988년이다. HIV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여지던 .. 2026. 8. 15. 평화의 상징이 타버린 날 — 올림픽에서 비둘기가 사라진 이유 지금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살아 있는 비둘기를 날리지 않는다.1920년부터 이어진 전통이었다. 흰 비둘기 떼가 경기장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었다.그 전통이 끝난 곳이 서울이다. 1988년 9월 17일개막식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1시 47분에 끝났다. 세 시간이 넘는 행사였다.굴렁쇠를 굴리는 아이가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장면은 지금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대목이다. 요란한 군무나 매스게임이 아니라, 아이 하나가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는 정적. 당시로서는 대담한 연출이었다.성화는 손기정이 경기장으로 들고 들어왔다. 임춘애가 받아 트랙을 돌았고, 세 사람이 최종 점화를 맡았다.그리고 순서에 따라 비둘기가 방사됐다.성화대에 앉은 비둘기들문제는 성화대였다.서울올림.. 2026. 8. 15. 라면 소녀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1988년 9월 17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성화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들고 온 사람은 손기정이었다. 쉰두 해 전 베를린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노인이 그날은 태극기 아래를 달렸다.그가 성화를 넘긴 상대는 스무 살 남짓의 여자 육상선수였다. 트랙을 한 바퀴 돌아 최종 점화자들에게 넘긴 그 선수의 이름은 임춘애다.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를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딴 소녀로 기억한다. 사실이 아니다.임춘애 - 선발전에 없던 선수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임춘애는 원래 국가대표가 아니었다.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발전 이후 열린 전국체전 3000미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그를 대표팀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뒤늦게 합류했다. 그리고 800미터, 1500미터, 3000미.. 2026. 8. 15. 약물로 얼룩진 서울올림픽 육상 100m결승 1988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여덟 명이 출발선에 섰다. 9초 79 뒤, 한 명이 세계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날 네 명이 10초 벽을 깼다. 육상 역사상 한 경기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3위 캘빈 스미스의 기록이 9초 99였는데, 3위가 10초를 깬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역사상 가장 빠른 100미터 결승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그 기록은 사라졌다.출발선의 여덟 명벤 존슨은 마지막으로 스타팅 블록에 들어갔다. 뒤에 들어가는 쪽이 심리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이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면면이 대단했다. 직전 올림픽 챔피언 칼 루이스, 전 세계기록 보유자 캘빈 스미스, 훗날 올림픽 챔피언이 되는 린포드 크리스티. 사상 최고의 스프린터 라인업이라는 말이 과.. 2026. 8. 15. 오심으로 메달색깔이 바뀐 복싱경기 — 이긴 사람이 진 이야기 승부는 숫자로 남는다. 그런데 어떤 경기는 두 개의 숫자를 남긴다.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 기록이다.1988년 10월 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이 그랬다. 그날의 두 숫자는 86 대 32, 그리고 3 대 2였다.앞의 숫자는 유효타 수다. 뒤의 숫자는 심판 판정이다. 그리고 뒤의 숫자가 이겼다.그날의 3분씩 세 라운드서울올림픽 복싱은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106개국에서 온 432명이 참가한 대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결승전 중 하나가 라이트미들급이었다.한쪽은 스물세 살의 박시헌. 다른 쪽은 열아홉 살의 미국인 로이 존스 주니어였다.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NBC의 유효타 집계는 1라운드 20 대 3, 2라운드 30 대 15.. 2026. 8.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