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0월 8일, 뉴욕 양키스타디움. 6만 4,519명이 들어찼다.
뉴욕 양키스와 브루클린 다저스. 월드시리즈 5차전이었고, 시리즈 전적은 2승 2패였다.
양키스의 선발투수는 스물일곱 살의 돈 라슨. 메이저리그 4년 차였고, 그때까지 통산 성적은 30승 40패였다. 그리고 사흘 전 2차전에서 그는 2회를 채우지도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참이었다.
그런 투수가 그날 오후 야구 역사상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시작했다.

사흘 전
2차전에서 라슨은 형편없었다. 다저스 타선에 두들겨 맞고 1⅔이닝 만에 강판됐고, 양키스는 13-8로 졌다.
월드시리즈에서 그렇게 무너진 선발투수가 같은 시리즈에서 다시 공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케이시 스텡겔 감독은 라슨을 다시 세웠다.
통보 방식도 특이했다. 경기 당일 아침, 라슨의 락커 신발 안에 야구공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선발 통보였다.
상대 타선
라슨이 상대해야 할 라인업이 문제였다.
피 위 리스, 듀크 스나이더, 재키 로빈슨, 길 호지스, 로이 캄파넬라. 훗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이름이 다섯이었다. 그날 로빈슨은 4번 타순에 있었다.
상대 선발도 만만치 않았다. 살 매글리는 시리즈 1차전에서 양키스를 잡은 투수였고, 이날도 8이닝 5피안타 2실점의 호투를 했다.
와인드업을 버렸다
라슨에게는 그해 시즌 막바지에 바꾼 것이 하나 있었다.
와인드업을 아예 없앤 것이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 없이, 세트포지션처럼 곧바로 던지는 방식이었다. 타자 입장에서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색해진다.
그날 다저스 타자들은 그 동작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2회, 첫 번째 고비
1회를 삼자범퇴로 끝낸 뒤, 2회에 첫 위기가 왔다.
재키 로빈슨이 3루수 앤디 캐리 쪽으로 강한 타구를 쳤다. 공이 캐리의 글러브를 맞고 튀었고, 그 뒤에 있던 유격수 길 맥두걸드가 잡아 1루로 던졌다. 서른일곱 살의 로빈슨이 한 걸음 차이로 아웃됐다.
몇 년 전의 로빈슨이었다면 안타가 됐을 타구였다.
4회와 6회
득점은 양키스가 먼저 냈다.
4회, 미키 맨틀이 매글리의 커브를 오른쪽 담장 너머로 보냈다. 그해 타율과 홈런, 타점 모두 1위에 오르며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선수였다. 1-0.
6회에는 캐리가 안타로 나가고 라슨이 번트로 진루시킨 뒤, 행크 바우어의 적시타로 한 점을 더했다. 2-0.
라슨에게는 그 두 점이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5회, 맨틀
두 번째 고비는 5회에 왔다.
길 호지스가 좌중간 깊숙한 곳으로 큰 타구를 날렸다. 당시 양키스타디움의 그 구역은 '데스 밸리'라 불릴 만큼 외야가 넓었다.
중견수 맨틀이 계속 뒤로 달렸고, 마지막 순간 글러브를 반대로 뻗어 잡아냈다. 훗날 맨틀은 그것을 자기 경력 최고의 수비라고 말했다.
라슨의 퍼펙트게임이 온전히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닝이 쌓일수록 더그아웃이 조용해졌다.
야구에는 오래된 미신이 있다. 노히트가 진행 중일 때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면 깨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은 라슨 곁에 앉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6회가 지나고 7회가 지나고 8회가 끝날 무렵, 관중 6만 명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아웃카운트 세 개가 남아 있었다.
맨틀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2,400경기 넘게 뛰었지만 그날 9회만큼 긴장한 적은 없었다고. 마운드에 서 있던 것도 아닌 중견수가 그랬다.
9회
첫 타자 칼 푸릴로가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캄파넬라는 2루수 빌리 마틴 쪽 땅볼이었다.
이제 한 명이었다.
다저스 벤치가 매글리 대신 대타를 냈다. 데일 미첼. 통산 타율 3할 1푼 2리에, 3,984타수 동안 삼진은 119번밖에 당하지 않은 타자였다. 서른네 타석에 한 번꼴로 삼진을 당한 셈이다. 27번째 아웃을 잡아야 하는 투수에게 최악의 상대였다.
97번째 공
초구는 높고 바깥으로 빠졌다. 볼.
두 번째는 느린 커브가 스트라이크존을 지나갔다. 세 번째 커브에 미첼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네 번째 공은 파울이 됐다.
볼 하나에 스트라이크 둘. 라슨의 97번째 공은 높은 직구였다.
미첼이 스윙을 하려다 멈췄다. 그런데 주심 베이브 피넬리의 손이 올라갔다. 삼진.
미첼은 그 공이 높았다고 항의했고, 평생 그 판정이 틀렸다고 말하고 다녔다. 피넬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경기에서 반대로 판정하려면 훨씬 더 애매한 공이어야 했다고.
공교롭게도 그 판정은 22시즌을 일한 피넬리의 마지막 콜이기도 했다.
27
경기 시간 2시간 6분. 투구 수 97개. 탈삼진 7개. 볼카운트가 3볼까지 간 타자는 1회의 피 위 리스 한 명뿐이었다.
안타 없음. 볼넷 없음. 실책 출루 없음. 27명이 들어와 27명이 물러났다.
요기 베라가 마운드로 달려가 라슨의 몸에 뛰어올라 매달렸다.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은 그 사진은 야구 역사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베라는 그날 97개의 공을 전부 받았다.

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퍼펙트게임이 곧 우승은 아니었다.
이 승리로 양키스가 3승 2패로 앞섰지만, 다저스는 6차전을 연장 끝에 1-0으로 가져갔다. 승부는 7차전까지 갔고, 양키스가 9-0으로 이기며 우승했다.
라슨은 월드시리즈 MVP로 뽑혔다.
가장 평범한 투수
이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지점이 여기다.
돈 라슨은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14시즌을 뛰며 통산 81승 91패를 기록했고, 1954년 볼티모어에서는 3승 21패로 아메리칸리그 최다 패전 투수가 되기도 했다. 1956년 정규시즌 성적 11승 5패는 좋았지만 리그 최고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투수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경기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사흘 전에 두들겨 맞고 내려온 상대를 다시 만나서.
70년
그 뒤로 수많은 위대한 투수가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올랐다. 샌디 코팩스, 밥 깁슨, 랜디 존슨, 클레이턴 커쇼.
그러나 라슨의 경기는 지금까지도 포스트시즌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퍼펙트게임으로 남아 있다. 노히트노런은 몇 차례 더 나왔다. 2010년 로이 할러데이가 디비전시리즈에서 던졌고, 2022년 월드시리즈에서는 휴스턴 투수 네 명이 이어 던진 합작 노히터가 나왔다. 다만 한 명도 1루를 밟지 않은 경기는 아직 없다.
돈 라슨은 2020년 1월 1일, 아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완벽함은 한 번뿐이었다
라슨은 그 뒤로도 10년 넘게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다시는 그날 같은 경기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투수가 하루 완벽해졌고, 그 완벽함이 반복되지 않았다.
1956년 10월 8일 오후, 브루클린 다저스의 명예의 전당 타자들이 차례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아웃카운트 하나씩이 되어 사라졌다. 97개의 공으로.
그리고 그 경기는 아직 반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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