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0월 21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렸다.
한쪽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반대편에는 신시내티 레즈가 있었다. 레즈는 이미 '빅 레드 머신'이라 불리던 팀이었다. 조니 벤치, 피트 로즈, 조 모건, 토니 페레스. 그 시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이름들이 한 라인업에 모여 있었다.
보스턴은 절박했다. 시리즈 전적 2승 3패. 이 경기를 지면 시즌이 그대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시각, 한 포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칼튼 피스크.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이 재생된 몇 초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사흘을 기다렸다
사실 이 경기는 예정된 날짜에 열리지도 못했다. 5차전이 끝난 뒤 비가 계속 내리면서 6차전은 사흘이나 미뤄졌다.
선수들은 그동안 계속 기다려야 했다. 지금처럼 실내 연습시설이 갖춰져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리듬을 잡기 어려운 사흘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1일 밤, 3만 5,205명의 관중이 들어찬 펜웨이 파크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시작부터 이상했다
경기는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1회에 프레드 린이 스리런 홈런을 때리며 보스턴이 3-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5회에 신시내티가 따라붙어 3-3을 만들었고, 7회에 조지 포스터의 2타점 2루타로 역전했으며, 8회에는 세사르 헤로니모의 홈런까지 나오며 6-3으로 달아났다.
거기까지가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그런데 8회 말 2사에서 대타로 나선 버니 카보가 스리런 홈런을 쳤다. 6-6. 시즌이 끝나기 직전에 보스턴이 다시 살아났다.
이후 경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9회도, 10회도, 11회도 점수는 그대로였다. 11회에는 조 모건의 큼직한 타구를 드와이트 에번스가 우익수 파울 라인 근처에서 뛰어올라 잡아낸 뒤 1루로 던져 더블 플레이를 완성했다. 이 수비가 없었다면 12회 말 자체가 오지 않았다.
선수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 피스크는 포수였다. 경기 내내 쪼그려 앉아 공을 받고, 타자를 읽고, 투수를 관리해야 하는 자리다. 그는 그 밤 내내 한 번도 장비를 벗지 않았다.
12회
12회 말, 보스턴의 공격이 시작됐다. 선두 타자는 칼튼 피스크였다.
마운드에는 신시내티의 여덟 번째 투수 팻 다시가 있었다. 앞선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있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우완이었다. 피스크에게는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훗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딱 하나였다고 말했다. 낮게 던지려는 우완이라는 것.
초구는 높게 빠졌다. 볼. 그리고 2구, 낮게 가라앉는 공이 들어왔다. 피스크가 기다리던 공이었다.
순간적으로 알았다
공은 강하게 맞아 왼쪽 외야로 날아갔다.
문제는 방향이었다. 타구가 파울 라인 바깥쪽으로 계속 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리면 파울, 그러면 경기는 그대로 이어진다.
피스크는 1루를 향해 몇 걸음 뛰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두 팔을 크게 휘젓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공에게 말을 거는 사람처럼. 한 번, 두 번, 계속.
그리고 다음 순간, 공이 펜웨이 파크 왼쪽 파울 폴에 붙은 노란 그물을 때렸다. 홈런이었다.
쥐 한 마리가 만든 화면

그런데 이 장면이 남은 데에는 우연이 하나 겹쳐 있다.
당시 중계 관행에서 카메라맨은 타구를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날 NBC의 베테랑 카메라맨 루 제라드는 그린 몬스터 안쪽, 수동식 스코어보드의 구멍을 통해 경기를 찍고 있었다. 피스크가 타석에 들어서자 중계 감독 해리 코일이 무전으로 지시했다.
공을 치면 공을 따라가라.
제라드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다리 위에 고양이만 한 쥐가 올라와 있고 오른쪽은 철제 구조물에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제안했다. 그냥 피스크한테 두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그래서 그날 3천6백만 명의 시청자가 본 것은 날아가는 공이 아니라, 공을 향해 팔을 흔드는 한 선수의 몸이었다. 스포츠 중계에서 '리액션 숏'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그날 밤에 태어났다. 이후 카메라는 공만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쥐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부풀려졌고, 지금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가리기 어렵다. 다만 코일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 쥐가 없었다면 그 화면은 없었을 것이라고.
7-6
펜웨이 파크가 폭발했다.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왔고, 피스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베이스를 돌았다. 홈 플레이트에는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7-6, 12회 끝내기 홈런. 끝날 뻔했던 월드시리즈가 7차전으로 넘어갔다.
흔한 오해 하나
사람들은 흔히 피스크가 공을 조종하려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몸짓은 그보다 훨씬 인간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그는 처음에 그 공이 파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이 계속 휘었고, 파울이 되거나 홈런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팔이 나갔을 뿐이다.
결국 공은 파울 폴을 맞았다. 야구에서 파울 폴은 이름과 달리 페어 지역에 서 있고, 그래서 폴을 맞으면 홈런이다. 피스크의 손짓이 공의 궤적을 바꾼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그가 공을 페어 지역으로 끌어당긴 것처럼 보였고, 바로 그 착시가 전설이 됐다.
그리고 방망이
그날 피스크가 쥐고 있던 방망이에도 사연이 있다.
그것은 그의 방망이가 아니라 동료 유격수 릭 벌슨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모델을 썼지만 피스크의 것이 더 길고 무거웠는데, 경기가 길어지면서 자기 방망이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짧고 가벼운 벌슨의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섰다.
그 방망이로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홈런이 나왔고, 지금 그것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보관돼 있다.
피트 로즈가 말했다
이 경기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11회, 타석에 들어선 피트 로즈가 흥분한 얼굴로 피스크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경기는 처음이라고, 지금까지 뛰어본 경기 중 최고가 아니냐고.
피스크는 그때 이미 졸음이 몰려올 만큼 지쳐 있었다고 회고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그런데 로즈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는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경기를 하고 있구나.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상대 팀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끝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의 잔인한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보스턴은 6차전을 이겼지만 우승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 날 7차전이 남아 있었고, 신시내티는 다시 일어났다. 9회 2사에서 조 모건이 빗맞은 안타를 쳐 켄 그리피를 불러들였고, 레즈가 4-3으로 이겼다. 월드시리즈 트로피는 신시내티가 가져갔다.
그래서 피스크의 홈런은 우승을 결정한 홈런이 아니다. 탈락을 하루 미룬 홈런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7차전보다 6차전을 훨씬 오래 기억한다.
4시간 1분
그날 경기는 4시간 1분 동안 이어졌다. 당시로서는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긴 경기였다. 피스크의 타구가 폴을 맞은 시각은 이미 10월 22일 오전 12시 33분이었다.
만약 그 공이 몇 인치만 더 바깥으로 휘었다면 파울이었을 것이다. 경기는 계속됐을 것이고, 지친 포수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앉았을 것이다. 몇 인치 안쪽이었기 때문에 홈런이었다. 야구는 그런 스포츠다.
한 장면이 남긴 것

칼튼 피스크는 2000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4시즌 동안 2,356안타와 376홈런을 남겼고, 포수로 소화한 경기 수에서 오랫동안 역대 1위였다. 홈런 한 방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그 몇 초다. 왼쪽으로 휘어지는 타구, 1루로 뛰다 멈춰 선 남자, 두 팔을 흔드는 몸짓, 그리고 파울 폴을 때리는 소리.
야구는 왜 이 장면을 사랑할까
아마도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자는 공을 쳤고, 그 순간 이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은 이미 손을 떠났다. 그런데 피스크는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몸을 돌리고 팔을 흔들었다. 물론 그 행동이 궤적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면 앞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와 함께 공을 밀고 있었다.
명예의 전당은 이 장면을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중계를 연출했던 해리 코일 역시 피스크의 반응을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개인 리플레이로 꼽았다. 30년 가까이 월드시리즈 중계를 맡아온 사람의 평가였다.
손짓 하나
1975년 10월 22일 오전 12시 33분, 펜웨이 파크, 12회 말.
칼튼 피스크가 친 공이 왼쪽으로 휘었다. 그는 두 팔을 흔들었다. 공은 계속 날아갔고, 왼쪽 파울 폴을 맞았다. 홈런. 보스턴 7, 신시내티 6.
피스크가 두 팔을 번쩍 들었고 관중이 그라운드로 쏟아졌다. 그의 고향인 뉴햄프셔 찰스타운에서는 그 새벽에 교회 종이 울렸다고 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 장면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 공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페어가 됐고, 한 선수는 정말 간절하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다. 그저 공이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날 밤 야구는 그 바람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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