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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이야기

MLB야구: 필 니크로 - 300승을 앞두고 너클볼을 버렸다

by marsol-sports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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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 6일, 캐나다 토론토의 엑시비션 스타디움. 뉴욕 양키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다.

순위상으로는 의미가 거의 없는 경기였다. 토론토는 전날 양키스를 꺾고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확정했고, 양키스의 가을야구도 그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는 달랐다. 양키스의 마흔여섯 살 투수, 필 니크로. 그는 299승에서 한 달 가까이 멈춰 서 있었다.

야구에서 300승은 특별한 숫자다. 한 시즌 20승도 어려운데, 300승을 하려면 오랜 세월 정상급 투수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니크로에게 이날은 그해의 마지막 기회였다.

필 니크로
필 니크로

네 번의 실패

299승을 올린 것은 9월 초였다. 그때만 해도 남은 시즌에 한 번쯤은 나오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나오지 않았다. 9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고도 패한 경기가 있었고, 팀이 뒤늦게 역전하는 바람에 승리가 돌아가지 않은 경기도 있었다. 네 차례 등판에서 300승은 오지 않았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공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너클볼이 너클볼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평생 그를 먹여 살린 공이 하필 가장 필요한 시점에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오하이오의 병실

같은 시기, 그는 등판 사이사이에 오하이오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필 니크로 시니어가 위독했다. 오하이오 랜싱의 탄광 노동자였고, 젊은 시절에는 지역 세미프로 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강속구 투수였다. 어느 봄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던지다 팔을 다쳐 다시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없게 됐고, 그때 동료 광부에게 배운 것이 너클볼이었다. 그는 그 공을 뒷마당에서 두 아들에게 가르쳤다.

병상의 아버지는 의식이 흐린 상태였다. 니크로 형제와 어머니가 며칠씩 곁을 지켰다. 어느 날 잠깐 정신이 든 아버지가 종이에 글씨를 적었다. 이기면 기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몇 글자였다.

그 뒤로 아버지는 다시 반응하지 않았다. 니크로는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약속하고 토론토로 향했다.

상대는 힘을 뺐다

10월 6일의 토론토는 전날 우승을 확정한 팀이었다.

바비 콕스 감독은 주전을 대거 쉬게 했다. 로이드 모즈비, 윌리 업쇼, 조지 벨이 빠진 자리에 루키 세실 필더와 경력 막바지의 제프 버로스 같은 이름이 들어갔다. 선발투수도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 존 세루티였다.

니크로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날 블루제이스 선수들은 전날의 축배가 덜 깬 상태였다. 300승을 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고, 동시에 그 점이 그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상한 결심

그래서였는지, 몸을 푸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 오래 묵혀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너클볼 없이 한 경기를 던져보는 것.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를 너클볼 하나로 버티는 투수라고 여겼다. 그 공이 없으면 아무도 못 잡는다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그는 그 말을 반박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난 네 경기에서 너클볼은 이미 그를 배신하고 있었다.

경기 전 그는 기자들에게 마지막 타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너클볼을 던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26개의 아웃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던졌다.

시속 130킬로미터대의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심지어 스크루볼까지 섞었다. 마흔여섯 살 투수가 평생 주무기를 봉인한 채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한 것이다.

그런데 통했다. 5회가 끝났을 때 양키스가 5-0으로 앞섰고, 9회에 들어갈 때는 8-0이었다. 그동안 토론토가 뽑아낸 안타는 세 개뿐이었다. 7회 버로스가 좌측 라인 쪽으로 떨어뜨린 2루타가 그중 하나였다.

26개의 아웃을 잡을 때까지 그는 너클볼을 한 개도 던지지 않았다.

마운드에 올라온 동생

여기서 이 경기의 가장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그날 양키스 벤치에는 동생 조 니크로가 있었다. 역시 너클볼을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였고, 그해 9월 트레이드로 형과 같은 팀이 된 참이었다. 빌리 마틴 감독은 이날 조에게 투수코치 역할을 맡겼다.

전날 밤 형제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워두었다. 조가 중간에 구원 등판해 형의 300승에 이름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9회 2사, 마운드에 올라온 사람은 투수코치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조가 형에게 말했다. 하나만 더 잡으면 역대 최고령 완봉이라고.

필의 대답은 짧았다. 계획은 잊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나한테 던져"

2·3루에 주자가 있었고, 타석에는 제프 버로스가 들어섰다. 한때 애틀랜타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이자 아메리칸리그 MVP 출신이었다.

고의4구로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할지 논의가 오갔다. 그때 버로스가 마운드 쪽을 보며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나한테 던지라는 뜻이었다.

니크로는 초구에 직구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사인을 바꿨다.

세 개의 너클볼

그날 경기에서 처음으로 너클볼이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니크로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거의 1미터 가까이 바깥으로 흐른 공이었다.

버로스가 방망이를 냈다. 헛스윙 삼진. 경기 종료.

양키스 8, 블루제이스 0. 필 니크로 300승.

왜 마지막 공이었나

이 장면이 니크로의 300승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여덟 이닝 넘게 너클볼 없이 던져 자신이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한 타자에게만 그 공을 꺼냈다.

훗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삼진으로 300승을 끝낼 수 있다면, 자신의 첫 승리를 만들어준 그 공으로 하고 싶었다고.

그 공을 가르쳐준 사람은 오하이오의 병실에 누워 있었다.

마흔여섯의 완봉

필 니크로 300승 경기 장면

 

그날의 기록은 300승만이 아니었다.

4피안타 완봉. 마흔여섯 살 188일. 당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령 완봉 기록이었고, 2010년 제이미 모이어가 마흔일곱 살 170일에 완봉승을 거두기 전까지 유지됐다.

300번째 승리를 완봉으로 장식한 투수는 95년 만이었고,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300승을 채운 투수는 그가 처음이었다.

늦은 시작

니크로의 경력은 전형적인 스타의 그것과 달랐다.

1958년 고교 졸업 직후 밀워키 브레이브스와 계약했지만 곧바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했고 군 복무로 한 시즌을 통째로 비웠다. 메이저리그 데뷔는 스물다섯 살이던 1964년이었다.

제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67년이다. 그해 평균자책점 1.87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미 스물여덟이었다.

그리고 마흔 이후

정작 그가 놀라운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마흔 이후에만 121승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이다. 보통 투수는 나이가 들면 구속이 떨어지고 곧 공략당한다. 그런데 너클볼은 애초에 빠를 필요가 없는 공이었다. 팔에 부담도 적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도 로테이션을 돌 수 있었다.

300승도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클리블랜드에서 마흔일곱의 나이로 210이닝을 던지며 11승을 거뒀고, 1987년에는 클리블랜드와 토론토를 거쳐 애틀랜타로 돌아가 9월 27일 마지막 경기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마흔여덟이었다.

최종 기록은 24시즌 318승 274패, 평균자책점 3.35, 탈삼진 3,342개, 5,404⅓이닝. 라이브볼 시대 이후 데뷔한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이다.

동생, 그리고 539승

동생 조 니크로 역시 너클볼 투수였다.

두 사람은 애틀랜타에서, 그리고 1985년 양키스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형이 318승, 동생이 221승. 합쳐서 539승은 메이저리그 형제 투수 최다 기록이다.

한 탄광 노동자가 뒷마당에서 두 아들에게 가르친 공이 만들어낸 숫자다.

남지 않은 것

화려한 기록 옆에는 비어 있는 칸도 있다.

니크로는 24시즌을 뛰면서 월드시리즈에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것 역시 메이저리그 기록이다. 올스타에는 다섯 번 뽑혔지만 실제로 던진 것은 9년 간격의 두 경기에서 1⅓이닝이 전부였다. 그의 공을 받을 수 있는 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명예의 전당 입성도 한 번에 되지 않았다. 다섯 번째 투표였던 1997년에야 이름이 불렸다.

그 한 공

1985년 10월 6일, 마흔여섯 살의 필 니크로는 여덟 이닝 넘게 자신의 주무기를 봉인한 채 던졌다.

사람들이 너클볼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8-0이라는 스코어로 보여줬다.

그런 다음 마지막 한 타자에게, 그는 그 공을 꺼냈다.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난 너클볼 세 개. 마지막 헛스윙.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그 한 공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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