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2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메트로돔. 월드시리즈 7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반대편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그날 경기에는 규칙이 하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먼저 한 점을 내는 팀이 이긴다.
마운드에는 잭 모리스가 있었다. 서른여섯 살의 베테랑이었고, 세인트폴에서 태어나 그해 고향 팀 유니폼을 입은 투수였다. 그는 이미 이 시리즈에서 두 번 선발로 나섰는데, 사흘만 쉬고 또 공을 잡았다.
상대는 스물네 살의 존 스몰츠. 디트로이트 인근에서 자라며 타이거스 시절의 모리스를 우상으로 여겼던 투수였다. 훗날 두 사람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밤, 둘은 7차전 역사에 남을 투수전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경기
7차전은 다른 경기와 다르다. 지면 끝이고, 다음 경기는 없으며, 내일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투수에게도 타자에게도 감독에게도 모든 판단이 마지막 판단이 된다.
게다가 이 시리즈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었다. 일곱 경기 중 다섯 경기가 1점 차였고, 네 경기가 마지막 공격에서 갈렸으며, 연장전이 세 번 있었다. 전날 6차전은 커비 퍼켓의 11회 끝내기 홈런으로 겨우 7차전까지 왔다.
모리스는 1차전에서 7이닝을 던져 승리를 챙겼고, 4차전에서는 6이닝을 던졌지만 승패 없이 물러났다. 그리고 7차전이 세 번째 등판이었다.
첫 공부터
경기가 시작되자 두 투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1회도, 2회도, 3회도, 4회도 0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중들도 이 경기의 성격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건 누가 점수를 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흔들리느냐의 문제였다.
5회
모리스가 처음 위기를 맞은 것은 5회였다.
선두타자 마크 렘키가 안타를 쳤다. 이 시리즈에서 렘키는 타율 4할이 넘는 미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라파엘 벨리아드가 희생번트로 그를 2루에 보냈고, 로니 스미스가 기습번트 안타로 살아나가면서 1사 1·3루가 됐다.
타석에는 그해 내셔널리그 타격왕 테리 펜들턴, 그다음이 MVP 후보 론 갠트였다. 그런데 펜들턴이 짧은 뜬공으로 물러났고, 갠트는 3볼 2스트라이크에서 바깥쪽 직구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여전히 0-0이었다.
7이닝의 침묵
6회와 7회에도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스몰츠도 대단했다. 7회까지 3루를 밟은 주자는 양 팀 통틀어 두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모두 미네소타 쪽이었다. 이제 한 번의 실수가 경기 전체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8회
그리고 이 경기에서 가장 아찔한 이닝이 찾아왔다.
애틀랜타의 로니 스미스가 선두타자로 안타를 쳤다. 다음 타자 펜들턴은 1볼 2스트라이크에서 포크볼에 헛스윙을 했는데, 심판이 파울 팁으로 판정했다. 나중에 모리스는 이 장면을 경기 최대의 분기점으로 꼽았다. 삼진이었어야 할 공이 살아났고, 펜들턴은 바로 다음 공을 좌중간 깊숙이 보내는 2루타로 만들었다.
1루에 있던 스미스는 충분히 홈까지 올 수 있는 타구였다. 그런데 그는 2루 근처에서 속도를 늦추더니 3루에서 멈췄다. 미네소타 2루수 척 크냅블라우흐와 유격수 그레그 개니가 마치 병살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몸짓을 했기 때문이다. 스미스 본인은 훗날 속은 것이 아니라 타구를 놓쳤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무사 2·3루. 타석에는 갠트. 모리스에게는 그날 밤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갠트가 1루수 켄트 허벡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을 쳤다. 1사 2·3루. 그러자 톰 켈리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와 다음 타자 데이비드 저스티스를 고의4구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만루를 만들고 병살을 노리겠다는 뜻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시드 브림이 1볼 2스트라이크에서 허벡 쪽으로 힘없는 땅볼을 쳤다. 허벡이 잡아 홈으로 던졌고, 포수 브라이언 하퍼가 3루 주자를 잡은 뒤 다시 1루로 던졌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3-2-3 병살이었다.
메트로돔이 폭발했다. 그리고 스코어는 여전히 0-0이었다.
스몰츠의 마지막

8회 말에는 미네소타가 똑같은 기회를 잡았다. 애틀랜타 감독 바비 콕스가 스몰츠를 내리고 마이크 스탠턴을 올렸고, 미네소타 역시 1사 만루에서 허벡의 직선타가 병살로 이어지며 점수를 내지 못했다.
스몰츠의 기록은 7⅓이닝 무실점,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이었다. 그가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도 승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9회, 그리고 대화
모리스는 9회를 막고 내려왔다. 투구 수는 118개였다.
정규시즌이라면 진작에 교체할 시점이었고, 미네소타에는 릭 아길레라라는 마무리도 있었다. 실제로 켈리 감독은 9회가 끝난 뒤 모리스에게 이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모리스의 대답은 짧았다. 자기 안에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어차피 내일은 경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그아웃에서 잠시 실랑이가 오갔고, 결국 켈리가 물러섰다. 훗날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누가 잭 모리스에게서 공을 빼앗을 수 있었겠느냐고.
훗날 모리스는 6회보다 8회에, 8회보다 10회에 몸이 더 좋았다고 회상했다.
마지막 3아웃
10회 초, 모리스는 세 타자를 차례로 돌려세웠다. 대타 제프 블라우저가 뜬공, 로니 스미스가 삼진, 펜들턴이 땅볼. 그 이닝에 그가 쓴 공은 여덟 개였다.
여전히 0-0.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남은 것은 타자들의 몫이었다.
한 점
10회 말, 댄 글래든이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뜬 타구를 2루타로 만들었다. 무사 2루.
크냅블라우흐가 희생번트로 그를 3루에 보냈다. 1사 3루. 애틀랜타는 커비 퍼켓을 고의4구로 거른 뒤 켄트 허벡까지 걸렀다. 1사 만루.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사람은 스타가 아니었다. 진 라킨. 무릎이 성치 않아 대타로만 나오던 선수였다. 콜럼비아대 출신에 통산 타율 2할 7푼, 큰 경기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던 타자가 아니었다.
투수는 알레한드로 페냐. 외야는 홈 승부를 위해 앞으로 바짝 당겨 서 있었다.
라킨은 초구, 바깥쪽 직구를 그대로 받아쳤다. 공은 왼쪽 외야 수비수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3루에 있던 글래든이 홈을 밟았고, 라킨은 몇 걸음 나가다 오른손을 들었다.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네소타 1-0 승리. 월드시리즈 우승. 잭 모리스가 10이닝 동안 기다린 단 한 점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웅은 누구였을까
경기의 마지막 장면을 만든 선수는 진 라킨이다. 하지만 그날의 영웅으로 가장 먼저 불린 사람은 모리스였다.
10이닝 무실점, 7피안타 2볼넷 8탈삼진, 126구.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10이닝을 던진 투수. 그 자체로 기록이었다.
왜 교체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야구팬이라면 먼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10회까지 던지게 했느냐고. 요즘이라면 투구 수를 관리하고 불펜을 붙이는 것이 상식이다.
당시의 야구가 지금과 달랐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날 모리스의 상태가 특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던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닝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고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스로 위기를 지웠다. 특히 8회의 3-2-3 병살은 경기 전체의 방향을 바꾼 장면이었다.
스몰츠도 지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잊혀서는 안 될 사람이 존 스몰츠다.
7⅓이닝 무실점,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스물네 살의 투수가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낸 성적이다. 그는 패전투수도 아니었고, 자기 몫을 완벽하게 해냈다. 다만 야구는 한쪽만 이기는 경기이고, 그날은 한 점이 필요했다. 모리스는 그 한 점이 나올 때까지 마운드에 남아 있었고, 스몰츠는 7⅓이닝에서 내려갔다.
그래서 이 경기는 흔히 '모리스의 완투'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두 투수가 함께 만든 밤이었다.
시리즈 MVP
모리스는 월드시리즈 MVP가 됐다. 세 차례 선발로 나서 23이닝을 던지며 자책점 3개만 허용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상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경기였다. 이기거나 끝나거나, 둘 중 하나뿐인 경기에서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한 점의 가치
야구에서 한 점은 때때로 아주 작아 보인다. 162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에서 한 경기의 한 점은 큰 의미를 갖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는 그 한 점이 우승과 패배를 갈랐다. 미네소타는 그 한 점을 얻기 위해 10회까지 기다렸고, 모리스는 그 한 점이 나올 때까지 10이닝을 던졌다.
그래서 이 경기를 다시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득점은 단 하나였는데, 긴장감은 어떤 난타전보다 컸다.
마지막 공
그날 메트로돔에는 5만 5,118명이 있었다. 그들은 10이닝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확신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 라킨의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고, 글래든이 홈을 밟았으며,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쏟아져 나왔다. 관중들은 하얀 수건을 흔들었다. 잭 모리스는 그제야 마운드를 떠났다.
기록보다 오래 남은 것
모리스의 10이닝은 지금까지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나온 유일한 10이닝 무실점 완봉으로 남아 있다. 1991년 7차전은 연장 끝에 1-0으로 끝난 유일한 7차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록만으로는 이 경기가 왜 특별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진짜 이야기는 숫자 사이에 있다. 사흘 쉬고 올라온 서른여섯 살 투수, 그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스물네 살 투수, 8회의 만루 위기와 병살, 9회가 끝난 뒤에도 공을 내놓지 않은 고집,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대타의 초구 안타.
스코어보드에는 1-0이 남았다. 숫자만 보면 아주 작은 승리다. 하지만 그 안에는 10이닝의 투구와 수많은 수비, 한 번의 병살, 한 번의 끝내기 안타가 들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는 한 점이 결코 작은 점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떤 투수에게는 그 한 점이 나올 때까지 마운드에 서 있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역할일 수도 있다는 것.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날 잭 모리스는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10회가 끝났을 때 마침내 그의 팀이 필요한 한 점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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