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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일반

육상: 포스버리 - 포스버리플롭의 창시자

by marsol-sports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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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뛰었더니 세계가 따라왔다

1968년 10월 20일, 멕시코시티 올림픽 주경기장. 남자 높이뛰기 결승이었다.

스물한 살의 미국 선수 하나가 바 앞에 섰다. 이름은 딕 포스버리.

 

높이뛰기 선수라면 바를 향해 곧장 달려가 몸을 엎드리듯 넘는 것이 상식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곡선을 그리며 비스듬히 달려왔고, 도약하는 순간 몸을 돌렸다. 등과 뒤통수가 바를 향했다.

뒤로 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몸을 활처럼 휘어 바를 넘었다.

오늘날 모두가 아는 그 동작, 포스버리 플롭이었다. 다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아무도 이것을 당연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딕 포스버리
딕 포스버리

못하는 아이였다

포스버리는 1947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메드퍼드에서 자랐다.

운동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학교 미식축구팀과 농구팀에 지원했다가 모두 떨어졌다. 훗날 그는 자기가 체육 수업을 통과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고, 그래서 붙든 것이 높이뛰기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높이뛰기도 잘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학교에서 가장 못 뛰는 선수였고, 지역에서도, 오리건주 전체에서도 그랬다고.

당시 주류 기술은 스트래들이었다. 바를 향해 달려가 배를 아래로 향한 채 몸을 굴리며 넘는 방식이다. 포스버리는 그전까지 쓰던 가위뛰기가 몸에 맞았지만, 코치는 그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니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스트래들과 웨스턴 롤을 배웠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다른 선택

대부분의 선수라면 연습을 더 하거나, 코치에게 다시 배우거나, 자세를 교정한다.

포스버리는 다른 쪽을 택했다. 자기 몸에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기 시작한 것이다. 1963년 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달려오는 방향을 바꾸고, 마지막 몇 걸음에서 곡선을 만들고, 한쪽 발로 도약한 뒤 몸을 뒤로 젖혔다. 머리와 어깨가 먼저 넘어가고 다리가 마지막에 따라왔다. 착지는 등으로 했다.

그가 이 방식으로 고등학교 시절 기록을 30센티미터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하나였다. 저렇게 뛰어도 되는 것인가.

매트가 없었다면

가장 큰 우려는 착지였다.

포스버리가 처음 이 동작을 시도하던 시절, 착지 지점에는 아직 톱밥이나 모래, 얇은 매트가 놓여 있는 곳이 많았다. 등과 목으로 떨어지는 기술은 위험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꺼운 폼 매트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와 겹쳤다는 우연이 있었다. 기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줄 장비가 마침 그때 등장한 것이다.

이름은 기자가 붙였다

포스버리 본인은 자신의 동작을 '백 레이아웃'이라 불렀다. 공학도다운 이름이었다.

그런데 지역 신문 기자가 사진 설명에 이렇게 썼다. 포스버리가 바 위로 플롭한다고. 'flop'은 털썩 넘어진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기술의 이름치고는 우스꽝스러운 단어였는데, 정작 본인이 그 표현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남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포스버리는 평생 자신이 뒤로 뛴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의 같은 시기, 캐나다의 데비 브릴이 독자적으로 거의 동일한 동작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브릴 벤드'라 불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채 같은 답에 도달했다.

 

포스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그저 그것을 먼저 발견해 가장 높은 무대에서 성공한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름을 붙일 권리를 얻었다고. 그 점이 자랑스럽다고.

결승

1968년 10월 20일, 25개국에서 온 39명이 출전한 결승이 시작됐다.

포스버리는 압도적인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당시 육상 전문지가 사상 가장 강한 진용이라 표현했던 대회였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뛰었다. 그리고 2.22미터까지 모든 높이를 첫 번째 시도에 넘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18미터에서 레이날도 브라운과 발레리 스크보르초프가 탈락했다. 2.20미터를 세 명이 넘었고, 2.22미터에서 소련의 발렌틴 가브릴로프가 세 번 모두 실패하며 동메달로 밀려났다.

이제 두 명이 남았다. 포스버리, 그리고 팀 동료 에드 캐러더스.

2.24미터

바가 올림픽 기록 높이인 2.24미터로 올라갔다. 당시 세계에서 이 높이를 넘어본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포스버리가 처음으로 실패했다. 두 번째도 실패했다. 캐러더스도 두 번 실패했다.

마지막 세 번째 시도. 그는 도약 전 주어진 2분을 모두 썼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평소 습관 대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달렸다.

 

바와 몸 사이에 손가락 몇 마디쯤 여유를 두고 넘어갔다.

캐러더스가 마지막 시도에 나섰지만 바를 떨어뜨렸다. 금메달이 결정됐다. 올림픽 기록이자 미국 기록이었다.

정작 포스버리는 매트에서 내려오면서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2.29미터

금메달을 확정한 뒤, 그는 바를 2.29미터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세계기록은 소련 발레리 브루멜이 5년 전에 세운 2.28미터였다. 브루멜은 포스버리가 고등학생 시절 자료를 찾아 읽으며 연구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이 대회에 나오지 못했다.

 

포스버리는 세 번 모두 실패했다. 세 번 다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는 세계기록을 세우지 못했다. 2.24미터는 그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남았고, 평생 그 높이를 넘지 못했다.

포스버리의 배면뛰기
포스버리의 배면뛰기

4년 뒤

1972년 뮌헨 올림픽 높이뛰기에는 40명이 출전했다. 그 가운데 28명이 포스버리의 방식으로 뛰었다.

1980년 모스크바에서는 결승에 오른 16명 중 13명이 그랬다. 197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정상급 선수들은 사실상 전부 이 기술을 썼고, 배를 아래로 향해 넘는 선수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4년 만에 괴상한 동작이 표준이 된 것이다.

무엇이 달랐나

높이뛰기는 결국 몸의 무게중심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 위로 통과시키느냐의 경기다.

포스버리의 방식은 몸을 활처럼 휘어 머리와 어깨, 허리, 다리를 순서대로 넘긴다. 몸 전체가 한꺼번에 바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무게중심이 바 아래를 지나면서도 몸은 바 위로 넘어갈 수 있다.

 

곡선 주로도 그냥 멋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곡선을 달리면 몸이 안쪽으로 기울고, 그 상태에서 도약하면 회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그는 이상하게 뛴 것이 아니라, 높이뛰기의 물리를 자기 몸에 맞게 다시 계산한 것이었다.

기록은 다른 사람들이 세웠다

여기에 묘한 반전이 있다.

1971년 미국의 팻 마츠도르프가 2.29미터로 세계기록을 세웠는데, 그는 스트래들로 뛰었다. 포스버리 플롭으로 세계기록을 처음 세운 사람은 1973년의 드와이트 스톤스였다. 2.30미터였다.

포스버리 본인이 세운 세계기록은 없다. 그런데 그의 기술이 다른 선수들의 세계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포스버리는 1972년 올림픽 대표 선발에서 탈락했다. 뮌헨에서 28명이 자신의 기술로 뛰던 그 경기에 정작 그는 없었다.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던 그는 이후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공학자의 길을 갔다. 훗날 그는 스포츠와 학업 사이에서 학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2023년 3월 12일, 그는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흔여섯이었다.

질문이 바뀌는 순간

스포츠에서 새로운 방식은 대체로 환영받지 못한다. 선수들은 기존 방식으로 성공해 왔고, 코치들도 그것을 가르치며, 기록도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날 멕시코시티에서도 반응은 갈렸다. 지도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관중은 완전히 매료됐다. 멕시코 관객들은 그가 뛸 때마다 "올레"를 외쳤고, 높이가 올라갈수록 소리가 커졌다.

 

포스버리는 굳이 누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 방식이 더 잘된다는 것을 기록으로 보여줬을 뿐이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왜 저렇게 뛰지, 에서 우리도 저렇게 해보자, 로.

뒤로 뛰었지만 앞으로 갔다

포스버리는 세계기록을 세운 선수가 아니다. 그의 개인 최고기록은 지금 기준으로는 평범한 축에 든다. 올림픽에도 한 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높이뛰기 이야기에서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기록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록을 만드는 방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스물한 살 청년이 등을 돌렸다. 관중은 의아해했고 코치들은 고개를 저었다. 4년 뒤에는 올림픽 출전 선수 40명 중 28명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뛰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상했던 것은 포스버리가 아니라,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뛰어야 한다고 믿었던 쪽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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