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 일반

올림픽: 다섯 번의 출발, 다섯 개의 금메달

by marsol-sports 2026. 8. 23.
반응형

1980년 2월,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세계의 시선은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쏠려 있었다. 대학생들로 꾸려진 팀이 소련을 꺾은 '미라클 온 아이스'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대회에는 또 한 명의 미국 선수가 있었다. 어쩌면 아이스하키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을 하고 있던 선수였다.

이름은 에릭 하이든.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 그는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다섯 번 출발했고, 다섯 번 모두 1위로 들어왔다.

에릭 하이든-레이크플래시드 5관왕
에릭 하이든-레이크플래시드 5관왕

서로 다른 다섯 개의 경기

이 기록이 왜 이상한지 이해하려면 종목의 성격을 먼저 봐야 한다.

500미터는 출발 반응과 폭발적인 스피드가 전부에 가까운 경기다. 반면 1만 미터는 400미터 트랙을 스물다섯 바퀴 도는, 페이스 관리와 지구력의 종목이다. 육상으로 치면 100미터 선수와 마라톤 선수를 같은 사람이 겸하는 셈이다.

 

그 사이에 1,000미터와 1,500미터, 5,000미터가 있다. 필요한 능력이 조금씩 다르고, 대부분의 선수는 이 가운데 두세 종목에 자신을 맞춘다. 두 극단 모두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여겨졌다.

하이든은 다섯 종목에 모두 출전했고, 다섯 개를 모두 가져갔다.

이틀 만에 드러난 것

첫 경기는 2월 15일 500미터였다. 하이든이 금메달을 땄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단거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 날이었다. 2월 16일, 5,000미터가 열렸다. 전날 폭발적인 스프린트로 우승한 선수가 하루 만에 장거리 트랙에 섰고, 또 이겼다.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이 두 경기가 사실상 대회의 성격을 결정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 선수가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2월 19일 1,000미터, 2월 21일 1,500미터에서도 하이든이 1위였다. 네 종목, 네 개의 금메달. 그리고 마지막 1만 미터가 남았다.

그런데 전날 밤

1980년 2월 22일 밤,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소련과 맞붙었다. 그리고 4-3으로 이겼다. 레이크플래시드 전체가 뒤집혔다.

하이든도 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1만 미터가 예정돼 있었다는 점이다.

늦잠

다음 날 아침, 그는 제때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을 때 이미 시간이 늦어 있었다.

훗날 하이든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아침을 제대로 챙길 여유가 없어 빵 몇 조각만 먹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올림픽 5관왕이 걸린 경기 당일 아침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한 준비였다.

마지막 25바퀴

1만 미터는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개인 종목 가운데 가장 긴 경기다. 스물다섯 바퀴 동안 상대와 직접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와 싸워야 한다. 초반에 조금 무리하면 마지막 몇 바퀴에서 그대로 무너진다.

그런데 하이든은 끝까지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최종 기록 14분 28초 13. 세계기록이었다.

다섯 번째 금메달이자, 마지막 경기에서 세운 세계신기록이었다.

기록의 크기

하이든이 남긴 것은 금메달 다섯 개만이 아니었다. 그는 다섯 종목 전부에서 올림픽 기록을 세웠고, 1만 미터에서는 세계기록까지 갈아치웠다.

한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다섯 종목을 모두 석권한 선수는 지금까지 그가 유일하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태연했다

재미있는 것은 하이든의 반응이었다.

보통은 금메달 하나만 따도 인터뷰에서 목소리가 떨린다. 그런데 그는 금메달을 대단한 보물처럼 대하지 않았다. 한 기자가 다섯 개의 금메달에 대해 묻자, 결국 어딘가에 놓여 먼지나 쌓일 물건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차라리 실제로 입을 수 있는 따뜻한 운동복 한 벌이 낫겠다는 농담까지 덧붙였다.

기자들은 그 대답을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자신의 성취를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선수는 아니었다

물론 그가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불쑥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하이든은 1976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 열일곱 살의 나이로 출전해 1,500미터 7위에 올랐다. 이후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세계 올라운드 선수권을 3년 연속 제패했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에서도 연달아 우승했다. 스프린트와 올라운드를 동시에 지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레이크플래시드의 5관왕은 갑자기 만들어진 기적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선수가 가장 중요한 시점에 자신의 능력을 전부 꺼내 보인 결과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탔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하이든은 빙판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거의 다 이룬 뒤, 그 종목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로 사이클로 옮겨갔고, 1985년 미국 프로 도로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팀 소속으로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했다. 다만 경기 도중 낙차 사고를 당해 완주하지는 못했다.

빙판에서 세계 최고였던 선수가 이번에는 알프스 산악 구간에서 페달을 밟고 있었다.

의사가 된 금메달리스트

의사가 된 에릭 하이든
의사가 된 에릭 하이든

그의 방향은 한 번 더 바뀐다.

하이든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1991년 의학 학위를 받아 정형외과 의사가 됐다. 이후 미국 스피드스케이팅과 사이클 대표팀의 의료진으로 일했고, NBA 팀 닥터로도 활동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거의 금메달이 아니라 지금의 직업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자기가 올림픽 선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환자가 자신을 찾는 이유가 금메달리스트여서가 아니라 의사여서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금메달보다 중요한 것

이 지점에서 하이든의 이야기가 조금 특별해진다.

대부분의 선수에게 최고의 순간은 선수 시절의 절정이고, 그 이후의 삶은 그 순간의 그늘 아래 놓인다. 하이든은 그러지 않았다. 스물한 살에 금메달 다섯 개를 가져간 뒤 자전거를 탔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며, 의사가 됐다.

올림픽 영웅이라는 과거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것이다.

다시 그날 아침

그래서 마지막 금메달을 다시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그는 늦잠을 잤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빵 몇 조각을 들고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물다섯 바퀴를 돌아 세계기록을 세웠다.

스포츠 영화라면 완벽한 준비 과정을 길게 보여준 뒤 마지막 경기의 세계기록으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실제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물론 이것을 늦잠을 자도 된다는 이야기로 읽으면 곤란하다. 그날의 늦잠은 그의 기록을 만들어준 요소가 아니라, 그가 그 전까지 얼마나 단단하게 쌓아왔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에피소드에 가깝다. 준비가 충분히 두꺼우면 하루의 사고 정도는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46년을 버틴 기록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에릭 하이든은 다섯 번 출발해 다섯 번 모두 1위로 들어왔다. 500미터, 1,000미터, 1,500미터, 5,000미터, 1만 미터.

한 번의 동계올림픽에서 개인 종목 금메달 다섯 개.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그 기록은 이후 46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노르웨이의 요하네스 회슬플로트 클레보가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섯 종목을 모두 석권하며 단일 동계올림픽 최다 금메달 기록을 새로 썼다. 다만 그중 두 개는 단체 종목이었다. 개인 종목만 놓고 보면 하이든의 다섯 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마지막 장면

1980년 2월 23일, 레이크플래시드. 하이든이 1만 미터 결승선을 통과했다. 14분 28초 13, 세계기록, 그리고 다섯 번째 금메달.

그 대회에서 미국이 가장 크게 열광한 장면은 전날 밤 소련을 꺾은 아이스하키였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는 따로 있었다. 그는 단 한 종목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의 삶에서 금메달만 바라보지도 않았다. 빙판을 떠나 자전거를 탔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며, 의사가 됐다.

미국 올림픽·패럴림픽 박물관이 그를 소개하는 문장도 그래서 흥미롭다. 다섯 개의 금메달은 그의 성공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정상에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은 정상에 오른 뒤, 그것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에릭 하이든은 스물한 살에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