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젊은 야구선수들이 모여 있었지만, 정작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뛰던 팀의 이름은 솔트레이크시티 트래퍼스(Salt Lake City Trappers).
당시 트래퍼스는 루키 수준의 파이오니어리그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다른 팀들과 달리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리그에 참가한 8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구단과 아무런 제휴가 없는 독립팀이었다.
쉽게 말하면, 상대 팀에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직접 관리하거나 지켜보는 유망주들이 있었지만 트래퍼스에는 그런 후광이 없었다.
그리고 그 팀이 어느 여름, 야구 역사를 뒤집었다.
버려진 선수들
트래퍼스의 선수 구성부터 특별했다.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프로 구단과 계약하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당시 구단 관계자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학 선수들을 찾아냈고, 야구계에서 한 번 외면받은 선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1987년 선수들의 월급은 고작 월 500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팀 선수들에게 없는 강한 동기가 있었다.
자신들이 정말 프로야구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당시 Los Angeles Times는 이 팀을 사실상 ‘야구의 고아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선수들이 자신을 잘못 평가한 스카우트들에게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6-0에서 시작
1987년 6월 25일.
트래퍼스의 홈구장인 더크스 필드에서 포카텔로 자이언츠와 경기가 열렸다.
시작은 최악이었다.
트래퍼스는 무려 0-6으로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났을 때 전광판에는 전혀 다른 숫자가 찍혔다.
12-6.
트래퍼스가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 경기를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이 경기가 훗날 29연승의 첫 번째 경기가 됐다.
이상한 연승
승리는 계속됐다.
한두 경기를 이기는 것은 루키리그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트래퍼스는 멈추지 않았다.
10연승을 넘어섰고, 20연승을 넘어섰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트래퍼스가 27연승에 도달했을 때는 더 이상 지역 야구팀이 아니었다.
당시 프로야구 최장 연승 기록이었던 27연승과 타이를 이룬 것이다.
이 기록은 1902년 텍사스리그의 코르시카나 오일러스가 세웠고, 192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다시 기록했다. 무려 66년 동안 아무도 넘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그리고 1987년 7월 25일.
트래퍼스는 포카텔로를 13-3으로 꺾었다.
이제 28연승이었다.
기록은 깨졌다.
다음 목표는 29연승이었다.
전국이 바라봤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Sports Illustrated, New York Times, USA Today, CNN, ESPN 등 전국 언론이 솔트레이크시티로 몰려들었다.
평소에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던 선수들이 갑자기 전국적인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스카우트들도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트래퍼스가 압도적인 스타 한 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987년 팀 타율은 .320이었다. 1루수 겸 지명타자 맷 허프는 .417, 포수 프랭크 콜스턴은 .397의 타율을 기록했다. 선수들의 평균 타격 연령과 투수 연령도 당시 파이오니어리그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 어린 유망주들이 대부분인 리그에서 트래퍼스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대학 출신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다.
즉, 이 팀의 비밀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가 아니었다.
마지막 한 경기
29번째 승리는 7월 26일에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인 7월 27일, 트래퍼스는 빌링스 머스탱스와 만났다.
이번에는 달랐다.
트래퍼스는 5-7로 패했다.
29연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패배의 과정이었다.
중견수 쪽으로 날아간 타구가 잡힌 것처럼 보였지만 심판은 공이 먼저 땅에 닿았다고 판정했다. 그 플레이 이후 상대에게 결정적인 득점이 이어지면서 트래퍼스의 믿을 수 없었던 연승도 막을 내렸다.
그렇게 32일에 걸친 전설이 끝났다.
그런데 우승까지 했다
보통 이런 엄청난 연승이 끝나면 팀은 후유증을 겪는다.
실제로 트래퍼스의 선수들은 연승 이후 심리적인 부담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즌을 망치지 않았다.
1987년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49승 21패.
승률은 정확히 .700이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헬레나 브루어스를 꺾고 파이오니어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것도 1985년과 1986년에 이어 3년 연속 우승이었다.
29연승이 우연한 한 달의 기적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기록보다 값진 것
솔트레이크시티 트래퍼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29라는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야구에서는 수많은 선수들이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재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사라지는 선수도 수없이 많다.
1987년 트래퍼스의 선수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판단을 마지막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여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유망주들과 경쟁하면서 29경기를 연속으로 이겼다.
그 기록은 오랫동안 미국 프로야구 최장 연승 기록으로 남았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29연승이라는 숫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끝난 선수였지만, 자신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사람들.
1987년 솔트레이크시티 트래퍼스는 그 사실을 야구 역사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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