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에서 42번은 아무도 달 수 없다. 리그 전체가 함께 비워둔 유일한 번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3,000안타를 친 선수는 지금까지 한 명뿐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이었다.
두 문장 다 문을 여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문 안에서 생을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여든이 넘어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받아치지 않을 용기
1947년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섰다. 메이저리그가 60년 넘게 유지해온 인종 장벽이 그날 무너졌다.
그를 데려온 단장 브랜치 리키가 계약 전에 요구한 것은 실력이 아니었다. 어떤 모욕을 당해도 받아치지 않을 용기였다. 로빈슨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뒤 벌어진 일들은 잘 알려져 있다. 관중석의 욕설, 상대 팀의 스파이크, 원정지에서 거절당한 호텔. 그는 그 시즌 신인왕이 됐고, 1949년에는 타격왕과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차지했다.
1956년에 은퇴했다. 그리고 1972년, 쉰셋에 세상을 떠났다. 당뇨와 심장병으로 몸이 무너져 있었고,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여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대개 문을 연 사람이 그 값을 낸다.

히로시마, 다섯 살
장훈은 194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이다. 아버지가 먼저 일본으로 건너갔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뒤따랐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다섯 살이던 그는 누나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보다 한 해 전쯤에는 화상을 입었다. 오른손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게 됐다.
원폭 피해자이고, 오른손이 불편하고,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아이.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안고 그는 야구를 시작했다.
동쪽의 오, 서쪽의 하리모토
고등학교 시절 그는 동갑내기 오 사다하루와 나란히 불렸다. 동쪽의 오, 서쪽의 하리모토.
두 사람 다 일본에서 태어난 외국 국적자였다. 오 사다하루는 중국계였고, 장훈은 한국 국적이었다. 일본 야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타자가 모두 일본 국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1959년 데뷔 시즌에 신인왕을 받았다.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가 됐다.
1975년 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면서 오 사다하루와 한 팀이 됐다.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따 'OH포'라는 말이 생겼다. 1976년 그는 1리 차이로 타격 2위에 그쳤고, 30경기 연속 안타로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일본의 안타 제조기 - 3,085안타
은퇴할 때 그의 기록은 이랬다. 2,752경기 출장, 통산 타율 3할 1푼 9리,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 수위타자 7회, 최고출루율 9회, 베스트나인 16회.
일본 프로야구에서 3,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지금까지 그가 유일하다.
화상으로 오른손 손가락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했다. 손이 하지 못하는 것을 반복이 대신하게 만든 셈이다.
은퇴 뒤 그는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도왔다. 삼성, 빙그레, 쌍방울, LG에서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았다. 1982년 몬트리올 올스타전에 각국 야구인을 초청했을 때, 그는 한국 야구인 대표로 시구했다. 일본 야구인 대표로 나온 나가시마 시게오와 나란히 서서.
바꾸지 않은 것
현역 시절 그는 여러 차례 귀화 제의를 받았다. 그때마다 거절했다.
이것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일본 야구의 최고 기록 보유자가 끝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한다는 사실. 재일 한국인 후배들에게 그는 기록 이상의 존재였다. 성적이 아니라 버틴 방식이 존경의 이유였다.
40년 넘게 그렇게 알려졌다.
2024년 12월, 산케이신문
여든넷의 장훈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처음 밝히는 것인데, 몇 해 전에 국적을 바꿨다고. 지금은 일본 국적이라고.
이유로 그는 한국 쪽에서 받은 서운함을 들었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도왔지만 한국시리즈 같은 자리에 초청받은 적이 없다는 것, 특정 시기 한국 정부가 재일교포를 대하는 태도에 실망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다만 재일교포로서의 자부심은 여전하며 뿌리를 잊지 않고 산다고도 했다.
한국에서의 반응은 갈렸다. 평생 지켜온 것을 결국 놓았다는 실망이 있었고,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냐는 반문도 있었다. 어느 쪽이 옳은지 나는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국적을 그의 미덕으로 소비했다. 그가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동안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는 별로 묻지 않았다.
지키는 일은 지키는 사람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재키 로빈슨 - 두 개의 번호
로빈슨의 42번은 1997년, 데뷔 50주년에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됐다. 해마다 4월 15일이면 리그의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달고 뛴다. 그날 하루는 그라운드 위 모두가 같은 번호다.
장훈에게는 그런 날이 없다. 그의 3,085안타는 일본 야구 기록집에 남아 있고, 그는 지금도 일본 방송에서 야구 이야기를 한다. 한국 야구 기록집에는 그의 이름을 적을 자리가 없다. 그는 한국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았으니까.
한 사람은 자기가 속한 나라의 문을 열었고, 그 나라는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로 했다. 다른 한 사람은 두 나라 사이에서 평생을 살았고, 두 나라 어느 쪽도 그를 온전히 자기 쪽 사람으로 세워두지 않았다.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개 이런 식으로 끝난다. 양쪽 모두에게 필요할 때는 우리 편이었다가, 조용해지면 저쪽 사람이 된다.
가끔 상상해본다. 다섯 살의 아이가 히로시마에서 누나를 잃고, 화상 입은 손으로 방망이를 잡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엇을 견뎠는지.
그 아이가 여든넷이 되어 국적을 바꿨다고 말할 때, 그것을 배신이라고 부를 자격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을까.
3,085개의 안타는 그가 혼자 친 것이다. 국적도 결국 그가 혼자 지켰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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