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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 한 선수의 죽음이 바꾼 규칙 세계 복싱의 타이틀전은 원래 15라운드였다. 지금은 12라운드다.세 라운드가 사라진 이유는 한 사람이다. 1982년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스물여섯 살의 한국 복서가 링에 쓰러졌고 나흘 뒤 세상을 떠났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4라운드 시작 후 19초였다. 그 19초 때문에 세계 복싱은 세 라운드를 잘라성냥갑으로 만든 관김득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관을 준비해 놓고 간다고. 진다면 절대 걸어서 링을 내려오지 않겠다고.그는 실제로 성냥갑으로 작은 관 모형을 만들어 가지고 갔다. 지금 이 문장을 읽으면 비장하다기보다 불길하다. 그런데 1982년 한국에서 이런 각오는 낯설지 않았다. 복싱은 가난한 집 아들이 인생을 뒤집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었고, 링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 2026. 8. 13.
김일의 이마와 타이슨의 통장 — 링에서 내려온 뒤의 긴 시간 선수의 이야기는 대개 마지막 경기에서 끝난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스무 살에 세계 챔피언이 된 사람에게도, 서른에 국민 영웅이 된 사람에게도, 그 뒤로 40년이 남아 있다. 야담이 관심을 두는 것은 대체로 그 40년이다.김일 - "너는 조선사람이니 박치기를 익혀라"김일은 1929년 전남 고흥의 섬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1948년부터 씨름 선수로 뛰었다. 당시로서는 큰 키인 180센티미터였다. 1956년 여수에서 선원들에게 얻은 일본 잡지에서 역도산에 관한 기사를 읽었고, 그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 체류자로 붙잡혀 1년을 형무소에서 보냈다. 1957년에야 도쿄의 역도산 체육관에 문하생 1기로 들어갔다.박치기는 그때 만들어졌다. 함경도 출신인 역도산은 평양 박치기의.. 2026. 8. 13.
여자 마라톤 - 험난했던 종목 인정 과정 한국 여자 마라톤의 첫 공식 기록은 3시간 00분 16초다.1981년 11월 1일, 제35회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 임은주가 서울 창동 네거리를 출발해 양주군 덕정 검문소를 돌아 들어왔다. 3시간을 16초 넘긴 기록이 한 나라 여성 마라톤 역사의 출발선에 적혔다.16초. 이 숫자가 나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필 그만큼 모자랐다는 것이, 이 이야기 전체를 요약하는 것 같아서.달리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말여성이 오래 달리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붙어 있었다. 다리가 굵어진다. 가슴에 털이 난다. 자궁이 떨어질 수 있다.지금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이것들은 당시 진지한 의학적 견해로 통용됐다. 그리고 이 견해들 위에서 올림픽 육상은 오랫동안 여성에게 800미터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성이 달리지 .. 2026. 8. 13.
104년 만의 사면, 사흘 만의 철회 — 승부 조작을 한 선수들 승부조작 이야기는 대개 적발에서 끝난다. 누가 얼마를 받았고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까지 쓰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그런데 이 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100년이 지나서도, 10년이 지나서도 같은 질문이 되돌아왔다. 이제 그만 용서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미국은 2025년에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은 2023년에 그렇다고 답했다가 사흘 만에 답을 거뒀다.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팀그해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신시내티 레즈에 졌다. 압도적인 우승 후보가 진 것이다.경기 직후부터 기자들 사이에 의혹이 돌았지만 이듬해 시즌이 시작될 무렵에는 잦아들었다. 1920년 9월 대배심이 열리면서 다시 불이 붙었고, 몇몇 선수가 돈을 받고 경기를 내줬다고 진술했다. 여덟 명이 기소됐다. 동기로 늘 지.. 2026. 8. 13.
사라진 스포츠 - 씨름과 미국 복싱 지금 대한민국의 천하장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회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그렇다.1985년 3월 18일, 제6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결승. 이만기와 이준희가 붙은 그 경기의 시청률은 68퍼센트였다. 2년 전 제1회 대회 최고 시청률도 61퍼센트였다. 월드컵 한국 대표팀 경기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됐을 때나 나오는 수치다. 민속씨름 중계가 KBS 뉴스 9의 방송 시각을 미루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 종목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다.스타가 만든 것, 스타가 가져간 것민속씨름은 1983년 4월 장충체육관에서 시작됐다. 제5공화국 문화정책의 산물이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시작하자마자 관중은 진짜였다.첫 대회에서 무명의 대학생 이만기가 우승했다. 우승 후보 이.. 2026. 8. 12.
오심으로 메달색깔이 바뀐 복싱경기 — 이긴 사람이 진 이야기 승부는 숫자로 남는다. 그런데 어떤 경기는 두 개의 숫자를 남긴다.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 기록이다.1988년 10월 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이 그랬다. 그날의 두 숫자는 86 대 32, 그리고 3 대 2였다.앞의 숫자는 유효타 수다. 뒤의 숫자는 심판 판정이다. 그리고 뒤의 숫자가 이겼다.그날의 3분씩 세 라운드서울올림픽 복싱은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106개국에서 온 432명이 참가한 대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결승전 중 하나가 라이트미들급이었다.한쪽은 스물세 살의 박시헌. 다른 쪽은 열아홉 살의 미국인 로이 존스 주니어였다.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NBC의 유효타 집계는 1라운드 20 대 3, 2라운드 30 대 15.. 2026.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