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마라톤의 첫 공식 기록은 3시간 00분 16초다.
1981년 11월 1일, 제35회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 임은주가 서울 창동 네거리를 출발해 양주군 덕정 검문소를 돌아 들어왔다. 3시간을 16초 넘긴 기록이 한 나라 여성 마라톤 역사의 출발선에 적혔다.
16초. 이 숫자가 나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필 그만큼 모자랐다는 것이, 이 이야기 전체를 요약하는 것 같아서.
달리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말
여성이 오래 달리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붙어 있었다. 다리가 굵어진다. 가슴에 털이 난다. 자궁이 떨어질 수 있다.
지금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이것들은 당시 진지한 의학적 견해로 통용됐다. 그리고 이 견해들 위에서 올림픽 육상은 오랫동안 여성에게 800미터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성이 달리지 않아서 기록이 없었던 게 아니다.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서 기록이 없었고, 기록이 없으니 달리지 않았다고 여겨졌다.1896년 아테네 올림픽 때 멜포메네라는 이름의 여성이 마라톤 코스를 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기장 진입을 저지당했다고도 한다. 사료가 빈약해 학계에서도 논쟁이 있는 이야기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이름이 열일곱 명의 공식 참가자 명단 옆에 나란히 적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덤불 뒤에 숨은 여자
1966년, 보비 깁이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 신청서를 보냈다. 돌아온 답장에는 여성은 생리학적으로 마라톤 거리를 달릴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 깁은 이미 6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몸이었다.
대회 당일 그는 출발선 근처 덤불 뒤에 숨어 있었다. 참가자 절반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완주했다. 번호표는 없었다. 기록에 남지 않는 완주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있었다.
지우지 않은 립스틱
이듬해인 1967년, 대학생이던 캐서린 스위처가 보스턴 마라톤에 신청서를 냈다. 당시 신청서에는 성별을 적는 칸이 없었다. 그는 번호표를 받았다. 배번 261번.
그전까지 도전한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이 여성임을 숨겼다. 가발을 쓰고 남장을 하거나, 가명을 쓰거나, 두꺼운 스웨터로 몸을 가렸다.
스위처는 반대로 했다. 귀걸이를 하고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출발선에 섰다. 립스틱을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에 절대 지우지 않겠다고 답했다.
5킬로미터쯤 지났을 때 대회 관계자 조크 셈플이 코스로 뛰어들었다. 그는 스위처의 등에서 번호표를 뜯어내려 했다. 함께 달리던 남자들이 셈플을 밀쳐냈다. 스위처는 계속 달렸고 완주했다.

사진 한 장이 한 일
이 장면은 사진으로 남았다.
한 여성이 달리고 있고, 남자가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고 있고, 또 다른 남자가 그 손을 막고 있는 사진. 라이프지가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 중 하나로 꼽았다.
그 사진이 여론을 움직였다. 1971년 뉴욕 마라톤이 여성 참가를 허용했다. 1972년 보스턴이 뒤따랐다. 1974년에는 여자부가 신설됐다. 그리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마침내 여자 마라톤이 정식 종목이 됐다.
1896년에서 1984년까지 88년이 걸렸다.
야담을 쓰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대개 논리가 아니라 장면이다. 여성도 42.19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움직이지 않던 것이, 등을 잡히면서도 달리는 사람의 사진 한 장에 움직였다.
1981년 11월 1일, 창동 네거리
스위처가 배번을 지킨 지 14년 뒤, 한국에서 첫 공식 기록이 나왔다.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서 임은주 선수가 3시간 00분 16초로 한국 최초의 여자마라톤 기록을 작성하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마추어 상위권 기록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 나라 여자 마라톤의 공인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이 이 숫자에 다른 무게를 준다.
기록이 없었다는 것은 대회가 없었다는 뜻이고, 대회가 없었다는 것은 그 전까지 달린 여성들의 시간이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임은주 이전에 달린 사람이 없었을 리 없다. 다만 시계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1997년 10월, 권은주가 세운 한국 신기록
16년 뒤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권은주는 그해 처음으로 풀코스 대회에 나갔다.
15킬로미터 지점부터 결승선까지 약 27킬로미터를 혼자 달렸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던 시절이다.
의암호와 소양강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홀로 뛰었다.
결승선 시계에 2시간 26분 12초가 찍혔다. 한국 여자 마라톤이 넘을 수 없다고 여기던 2시간 30분의 벽이 그때 깨졌다.
1981년의 3시간 00분 16초에서 1997년의 2시간 26분 12초까지, 16년 만에 34분이 줄었다.
이 기록은 21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2018년 김도연이 31초쯤 앞당길 때까지, 한국 여자 마라톤의 최고 기록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한 가지 덧붙이자면, 권은주는 21년간 기록 보유자로 사는 일이 자부심과 불안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잦은 부상으로 정작 큰 대회에서는 뛰지 못한 적이 많았다. 선수 시절 완주한 풀코스는 여섯 번 남짓이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영구 결번 261번
캐서린 스위처는 2017년, 일흔 살에 보스턴 마라톤을 다시 달렸다. 50년 전과 같은 배번 261번을 달고서다. 대회는 그 뒤 26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한 번 뜯기려 했던 번호가 아무도 달 수 없는 번호가 됐다.
지금 서울의 어느 러닝크루에서든 여성이 절반 넘게 뛰고 있다. 마라톤 대회 신청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처럼 몇 분 만에 마감된다. 이 풍경 속에서 자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싸움의 결과는 그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히는 것이니까.
다만 가끔은 되짚어보고 싶어진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중에, 누군가 덤불 뒤에 숨어서 시작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