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그 주 내내 폭풍이 지나간 뒤라 경기장은 덥고 습했다.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프랑스 대표팀 주장에게는 특별한 경기였다. 지네딘 지단은 대회가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서른네 살,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리던 선수의 마지막 무대였다.
그날 경기가 끝났을 때 세계가 기억한 것은 그의 패스도, 경기 운영도 아니었다.
연장 후반, 그가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다가가 머리로 가슴을 들이받았다. 마테라치가 쓰러졌고 지단은 퇴장당했다. 그것이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장면이 됐다.

완벽한 시작
전반 7분, 프랑스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키커는 지단이었다.
그는 잔루이지 부폰을 앞에 두고 가운데로 살짝 띄우는 파넨카를 선택했다.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 1-0.
지단다운 골이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고르는 선수. 그리고 이 골로 그는 월드컵 결승에서 세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1998년 결승에서 넣은 두 골에 이은 것이었다.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19분, 안드레아 피를로의 코너킥을 마테라치가 머리로 밀어 넣었다. 1-1.
이 경기의 두 골을 넣은 사람이 나중에 충돌하는 두 사람이었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지나치게 잘 짜인 구성처럼 보인다.
104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대목이 여기다.
연장 전반 104분, 프랑스가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지단이 뛰어올라 머리로 받았다. 방향도 힘도 좋았다.
그런데 부폰이 손끝으로 공을 크로스바 위로 넘겼다.
그 한 번의 선방으로 지단의 마지막 경기는 완벽한 결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이후 벌어질 일과 직접 연결된다.
훗날 마테라치의 회고에 따르면, 그 헤딩을 허용한 뒤 젠나로 가투소가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지단을 마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는 그다음부터 지단에게 바짝 붙었다.
110분
연장 후반, 두 사람이 나란히 상대 진영으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마테라치가 지단의 유니폼을 잡았다. 지단이 비꼬듯 말했다. 유니폼이 그렇게 갖고 싶으면 경기 끝나고 주겠다고.
그리고 마테라치가 대답을 했다.
지단은 몇 걸음 걸어갔다. 그러다 멈췄고, 몸을 돌렸고, 마테라치에게 다가가 머리로 가슴을 들이받았다. 마테라치가 뒤로 넘어졌다.
심판은 보지 못했다
공은 이미 앞쪽으로 넘어가 있었고,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삼사십 미터 떨어진 곳에 마테라치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고, 일어나지 않아서 경기를 멈췄다고.
그때 헤드셋으로 4심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호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봤다는 것이었다. 당시 모니터를 봤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FIFA는 이를 부인했다.
엘리손도가 레드카드를 꺼냈다. 110분이었다.
부폰이 자기 골문에서 달려 나와 부심에게 항의했고, 잠시 뒤에는 지단에게 다가간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지단은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갔다. 108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였다.
무슨 말이 오갔나
당시 지단은 정확한 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며칠 뒤 인터뷰에서 마테라치가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에 대해 매우 심한 말을 했고, 그것이 세 번 반복됐다고 밝혔다.
세계 언론은 입 모양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 발언이었다는 주장,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썼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테라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지단도 그 단어를 확인해준 적이 없다.
1년쯤 지난 2007년 8월, 마테라치가 자신이 한 말을 공개했다. 지단이 유니폼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은 유니폼보다 그의 누이가 낫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도 그는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의 진술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지단은 어머니와 누이에 관한 말이 세 번 반복됐다고 했고, 마테라치는 누이에 관한 한마디였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마테라치가 도발적인 말을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지단이 아무 이유 없이 폭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도발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대응이 정당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축구장에서 상대의 도발은 흔하다. 선수는 그것을 견뎌야 하고, 월드컵 결승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일이 지단에게 완전히 예외적인 사건도 아니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열네 번 퇴장당했고, 그중 열두 번이 도발에 반응하다 나온 것이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도 상대를 밟아 두 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적이 있다.
우아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선수에게 늘 붙어 있던 다른 얼굴이었다.
승부차기
지단이 나간 뒤 프랑스는 열 명으로 남은 시간을 버텼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이탈리아는 피를로, 마테라치, 데 로시, 델 피에로, 그로소까지 다섯 명이 모두 성공시켰다. 프랑스는 두 번째 키커 다비드 트레제게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앞에 떨어졌다.
이탈리아 5-3 승리.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이었다.
지단이 남아 있었다면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을 것이다. 다만 그가 있었다고 프랑스가 반드시 이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는 승부차기에 강했고 부폰이 있었다. 박치기 때문에 프랑스가 우승을 놓쳤다고 단정하는 것도 지나친 해석이다.

골든볼
그럼에도 이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사람은 지단이었다.
우승하지 못한 팀의 선수가, 그것도 결승에서 퇴장당한 선수가 파비오 칸나바로와 피를로를 제치고 골든볼을 받았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는 2005년 국가대표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 부진하던 프랑스를 되살렸다. 스페인전에서 골을 넣었고, 8강 브라질전에서는 티에리 앙리의 결승골을 만들어주며 경기 전체를 지배했다. 준결승 포르투갈전 결승골도 그의 페널티킥이었다.
퇴장 한 번으로 그 한 달을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과했다
지단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특히 그 장면을 본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다만 후회하느냐는 질문에는 다르게 답했다. 후회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가 그런 말을 해도 됐다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이유였다.
행동은 잘못이었지만 도발도 잘못이었다는 것. 그의 입장은 그 두 문장 사이에 있었고, 그래서 이 사건은 지금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마테라치 역시 세월이 흐른 뒤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이 자신의 경력을 대표하는 장면이 된 것이 싫고,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고. 그날 이후 그는 지단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나쳐 간 트로피
지단이 라커룸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월드컵 트로피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옆을 지나쳤다. 잠시 뒤 그 트로피는 마테라치와 이탈리아 선수들의 손에 들렸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서 퇴장당해 우승컵 옆을 그냥 지나가는 장면. 영화였다면 다른 결말을 골랐을 것이다. 주장이 끝까지 남고,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결말.
박치기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선수
지단을 그 몇 초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는 1998년 프랑스를 사상 첫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0년 유럽선수권도 제패했으며, 은퇴를 앞둔 나이에 다시 팀을 결승까지 데려갔다. 그리고 그 대회 최우수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오히려 그를 설명하는 데 묘하게 정확한 장면이 됐다. 그는 완벽한 선수가 아니었다. 위대했지만 사람이었다.
104분에 그는 월드컵을 끝낼 뻔했고, 110분에 자신의 경력을 끝냈다. 그 6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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