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널티킥
1994년 7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로즈볼.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브라질과 이탈리아. 두 팀 모두 세 차례 우승을 경험한 강호였고, 그날 이기는 쪽이 사상 첫 네 번째 별을 다는 팀이 될 예정이었다.
한낮의 기온은 섭씨 35도를 넘었다. 유럽 시청자를 위해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에 킥오프를 잡은 결과였다. 그 더위 속에서 90분이 지나도 0-0이었고, 연장 30분이 더 지나도 0-0이었다.
월드컵 결승이 승부차기로 결정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이탈리아의 등번호 10번이 페널티 스팟으로 걸어갔다. 로베르토 바조. 그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끌고 온 사람이었다.
공은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이 장면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다만 그 사진만 보면 바조에게 지나치게 불공평하다. 그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왔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최악의 시작
1994년의 바조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전해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받았다.
그런데 대회 초반의 그는 그 선수가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첫 경기에서 아일랜드에 0-1로 졌다. 두 번째 노르웨이전에서는 골키퍼 잔루카 팔리우카가 전반에 퇴장당했고, 아리고 사키 감독은 교체 골키퍼를 넣기 위해 바조를 빼기로 했다. 벤치로 걸어 나오던 바조가 혼잣말처럼 뱉은 한마디는 지금도 회자된다. 저 사람 미쳤군.
멕시코와 1-1로 비긴 이탈리아는 조 3위로 간신히 16강에 올랐다. 바조를 향한 비판도 함께 따라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완전히 바뀐다.
나이지리아
16강 상대는 나이지리아였다.
전반 25분에 선제골을 내줬고, 후반 30분에는 교체로 들어간 지 10여 분밖에 되지 않은 잔프랑코 졸라가 퇴장당했다. 한 골 뒤진 채 열 명. 탈락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
후반 43분, 바조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오른발로 공을 밀어 넣었다. 1-1. 그리고 연장전에서 얻어낸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켰다. 2-1 역전승이었다.
며칠 전까지 비판받던 선수가 이탈리아를 살렸다.
스페인, 그리고 불가리아
8강 스페인전도 팽팽했다. 1-1로 끝나가던 후반 43분, 바조가 골키퍼를 제치고 결승골을 넣었다.
준결승 상대는 그해의 돌풍이었던 불가리아였다. 바조는 전반에만 두 골을 넣었다. 첫 골은 왼발로 반대편 구석을 정확히 감아 찼고, 두 번째는 페널티킥이었다. 2-1 승리, 결승 진출이었다.
토너먼트 세 경기에서 그가 넣은 골이 다섯 개였다. 이탈리아가 넣은 골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몸이 무너졌다
문제는 그 불가리아전에서 생겼다.
후반 20분쯤 남기고 바조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교체됐다. 라커룸에서 그는 동료들과 떨어져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결승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남짓이었다. 준결승은 뉴욕에서 열렸고 결승은 캘리포니아였다.
브라질은 이미 현지에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했다. 회복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이틀이었고, 그동안 그의 훈련이라고는 팀 호텔 연회장 벽에 공을 차는 것이 전부였다.
훗날 그는 결승전 초반 내내 다치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렸다고 인정했다. 그날 그가 경기 내내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이유였다.
120분
부상을 안고 뛴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주장 프랑코 바레시는 대회 도중 무릎 반월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몸으로 결승전 120분을 전부 뛰었다.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지워버린 수비의 중심이었다.
브라질도 이탈리아 수비를 뚫지 못했다. 마르시우 산투스의 슛이 골대를 맞은 것이 그날의 가장 아까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다섯 번의 킥
이탈리아의 첫 키커는 바레시였다. 120분을 뛴 그의 슛이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브라질의 첫 키커 마르시우 산투스는 팔리우카에게 막혔다. 원점이었다.
이후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와 알베리코 에바니가 성공했고, 브라질에서는 호마리우와 브랑코가 성공했다. 네 번째 키커 다니엘레 마사로의 슛을 클라우디오 타파렐이 막아냈고, 둥가가 성공시켰다.
3-2.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가 걸어 나왔다.
왜 바조였을까
답은 단순하고 잔인하다. 그가 팀의 페널티킥 전담이었고,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여기까지 끌고 온 선수였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이렇게 썼다. 자신은 팀의 페널티킥 키커였고 한 번도 책임에서 도망친 적이 없다고.
한 가지 덧붙이면, 그가 성공했더라도 경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에는 베베투의 킥이 남아 있었다. 베베투는 자신이 마지막을 찰 것이라 확신하고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가 노린 곳
바조는 타파렐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훗날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타파렐은 늘 한쪽으로 몸을 던지는 골키퍼라, 발에 걸리지 않도록 중앙의 절반 높이를 노리기로 했다고. 그리고 그 판단 자체는 옳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타파렐은 왼쪽으로 몸을 날렸고, 계획대로 갔다면 손이 닿지 않았을 공이었다.
그런데 공이 너무 높이 떴다. 그는 크로스바 위로 3미터쯤 넘어갔다고 기억했다.
그는 자신이 커리어에서 놓친 페널티킥이 몇 개 되지 않으며 그마저 모두 골키퍼가 막은 것이었지 크로스바를 넘긴 적은 없었다고 썼다. 패서디나에서 벌어진 일에 쉬운 설명은 없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
공이 넘어간 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타파렐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렸다. 바조는 스팟 앞에 선 채 고개를 숙였다. 한 사람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 둘이 같은 프레임 안에 들어간 사진이 남았다.
브라질 3-2 이탈리아. 브라질의 네 번째 우승이자 1970년 이후 24년 만의 우승이었다. 이탈리아는 1970년에 이어 두 번째 준우승이었다.
그가 짊어진 것
바조는 훗날 그 순간 마음속으로 죽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도 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이 그 한 번의 킥이 됐다.
대회 초반 부진했고, 비판받았고, 열 명으로 싸우던 나이지리아전에서 팀을 살렸고, 스페인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불가리아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그러다 햄스트링을 다쳤고, 이틀 남짓 회복하고 결승에서 120분을 뛰었다. 그 모든 과정보다 마지막 몇 초가 더 오래 기억됐다.
축구는 계속됐다
그 실축이 그의 경력을 끝내지는 않았다.
바조는 그 대회에서 실버볼과 실버부트를 받았다. 대회 두 번째로 좋은 선수였고, 두 번째로 많은 골을 넣은 선수였다는 뜻이다.
이후에도 그는 대표팀에서 뛰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나갔다. 1990년, 1994년, 1998년 세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한 유일한 이탈리아 선수로 남아 있다.
그 자리에 섰다는 것
마지막 페널티킥을 맡는 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믿을 만한 선수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비난의 중심이 된다. 선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결과가 틀렸을 뿐이다.
바조 본인이 이 일에 대해 남긴 말이 아마 가장 정확한 요약일 것이다. 페널티킥은 그것을 찰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놓친다는 것.
1994년의 바조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마지막 슛이 아니라 그 슛을 차기까지의 여정을 봐야 한다. 그의 월드컵을 망친 것은 한 번의 킥이었지만, 그를 그 자리에 세운 것은 그 앞의 수많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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