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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야기

오심으로 메달색깔이 바뀐 복싱경기 — 이긴 사람이 진 이야기

by marsol-sports 2026. 8. 12.

승부는 숫자로 남는다. 그런데 어떤 경기는 두 개의 숫자를 남긴다. 하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 기록이다.

1988년 10월 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이 그랬다. 그날의 두 숫자는 86 대 32, 그리고 3 대 2였다.

앞의 숫자는 유효타 수다. 뒤의 숫자는 심판 판정이다. 그리고 뒤의 숫자가 이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 라이트미들급 결승전: 박시헌과 로이 존스 주니어
1988년 서울올림픽 라이트미들급 결승전: 박시헌과 로이 존스 주니어

그날의 3분씩 세 라운드

서울올림픽 복싱은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106개국에서 온 432명이 참가한 대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결승전 중 하나가 라이트미들급이었다.

한쪽은 스물세 살의 박시헌. 다른 쪽은 열아홉 살의 미국인 로이 존스 주니어였다.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NBC의 유효타 집계는 1라운드 20 대 3, 2라운드 30 대 15, 3라운드 36 대 14로 전부 존스의 우세였다. 합계 86 대 32. 박시헌은 스탠딩 다운을 두 번 당했고 주심에게 두 차례 경고를 받았다. 존스는 후반으로 갈수록 가드를 거의 올리지 않았다.경기장 안의 누구도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내 아나운서가 청코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다섯 장의 채점표

판정은 3 대 2였다. 나중에 공개된 채점표를 뜯어보면 이 경기의 성격이 드러난다.

소련의 그바자바와 헝가리의 파야르는 20점 만점제에서 60 대 56으로 존스를 택했다. 완승을 준 것이다. 우루과이의 두란과 모로코의 라르비는 59 대 58로 박시헌을 택했다. 한 점 차였다.

 

문제는 다섯 번째 심판이다. 우간다의 카술레는 59 대 59, 즉 무승부로 채점했다. 그리고 박시헌이 더 적극적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손을 들었다.

오심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누군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애매한 자리에 선 사람이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고, 그 기울기가 모여 결론이 된다.

 

경기 후 여러 기자들이 진술서를 남겼다. 모로코의 라르비 심판이 존스가 쉽게 이겼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개최국의 체면을 생각해 박시헌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심판들이 알아서 존스에게 표를 줄 것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각자 조금씩 봐주면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다섯 명이 동시에 생각하면, 결과는 바뀐다.

열하루 전, 같은 링에서

이 이야기를 서울올림픽 하나만의 사건으로 읽으면 절반만 보게 된다. 열하루 전 같은 체육관에서 반대 방향의 일이 있었다.

밴텀급의 변정일이 불가리아 선수에게 판정으로 졌다. 변정일은 두 차례 경고로 2점이 감점됐는데, 상대는 여덟 차례 경고를 받고도 감점이 없었다. 관중석이 폭발했고, 한국 코치진이 링에 뛰어들어 심판진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변정일은 링을 떠나지 않았다. 67분 동안 링 위에 앉아 있었다. 판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한 대회 안에서 한국 선수가 억울하게 지고, 한국 선수가 억울하게 이겼다. 열하루 사이에.

같은 링, 같은 채점 방식, 같은 인간들. 판정을 유리하게 받는 쪽이 되는 것과 불리하게 받는 쪽이 되는 것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다.

그 후 심판들에게 일어난 일

박시헌에게 표를 준 세 심판은 6개월 자격정지를 받았다. 이후 두란과 라르비는 영구 제명됐다.

1996년, 미국올림픽위원회가 조사를 요구했다. 동독 슈타지 문서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표를 주는 대가로 심판들이 돈을 받았다는 보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97년 IOC 조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문제의 심판들이 한국 측으로부터 향응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서울 복싱 경기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증거는 없다. 서른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이 문장이 공식 입장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가장 실질적인 결과는 다른 데 있었다. 올림픽 복싱에 전자 채점 시스템이 도입됐다. 사람의 판단을 믿지 못하겠으니 기계를 넣자는 결정이었다. 8년 뒤 애틀랜타에서 또 편파 시비가 붙었으니, 기계가 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긴 사람의 13년

박시헌은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조용히 은퇴했다. 프로로 전향하지 않았다.

그리고 13년 동안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딴 마지막 복싱 금메달의 주인이 그렇게 지냈다. 훗날 그는 그 시절 쏟아진 비난과 우울이 견디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금메달리스트가 은메달을 원했다. 32년이 지난 뒤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시상식 직후의 사진에는 이미 그 마음이 찍혀 있다. 판정이 발표되자 박시헌은 존스를 들어 올렸고, 그의 팔을 높이 들어 관중에게 보였다. 관중석에서는 존스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열아홉 살의 미국 청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몇 년 뒤 존스는 통역을 데리고 박시헌을 찾아갔다. 그 경기 당신이 이긴 거냐고 물었다. 박시헌은 고개를 저었다. 존스는 그걸로 됐다고 했다. 사실대로 말해주면 괜찮다고.

남은 것과 돌아온 것

존스는 금메달 없이 발 바커 트로피를 받았다. 대회 최우수 복서에게 주는 상이다. 우승자가 아닌 선수가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이후 그는 미들급부터 헤비급까지 네 체급을 석권했고, 프로 통산 66승 9패를 기록했다. 1990년대 최고의 파운드 포 파운드 복서로 불렸다. 서울에서 잃은 것을 그는 링 위에서 전부 되찾았다. 다만 금메달만은 아니었다.

 

2023년 5월 30일, 플로리다 펜서콜라.

존스는 촬영 인터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체육관에 갔다. 링 위에 박시헌이 서 있었다. 양쪽 가족이 함께 와 있었다. 박시헌은 아들의 통역을 통해 말했다. 금메달을 갖고 있었지만 돌려주고 싶었다고, 이건 당신 것이라고.

35년 만이었다. 두 사람 다 예순을 넘긴 뒤였다.

 

판정은 3 대 2로 남았고, 기록은 바뀌지 않았다. 공식 문서에는 여전히 박시헌이 금메달리스트로 적혀 있다. 실제 금속 덩어리는 지금 미국 플로리다의 한 목장에 있다.

 

야담을 쓰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질문이 있다. 기록과 진실이 어긋날 때 무엇이 남는가.

이 경우에는 둘 다 남았다. 어긋난 채로.

가끔 궁금해진다. 자기 채점표에 59 대 59라고 적어놓고 결국 한쪽 손을 들었던 그 심판은, 그 뒤로 그 밤을 몇 번이나 떠올렸을까. 두 선수는 서로를 찾아가 오래 걸린 화해를 했는데, 그 판정을 만든 사람들 쪽에서는 아무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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